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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 선출 싸움에 … 문닫힌 일제강제동원역사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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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해 5월 부산시 남구 대연동에 완공된 일제강제동원역사관. 세금 522억원이 쓰였지만 임원 선정을 둘러싼 소송으로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해 5월 부산시 남구 대연동에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 완공됐다. 일본이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한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전시공간이다. 지하 4층, 지상 3층 규모다.

 1~2층은 일반전시실, 3층은 기획전시실로 꾸며졌다. 일반전시실에는 조선인들을 강제로 동원한 사실을 입증하는 각종 사진과 재판 기록, 당시 신문기사 등이 전시돼 있다. 지하에는 당시 유물들을 보관하는 수장고가 있다. 이 시설을 짓는 데 세금 522억원이 쓰였다.

 그런데 이 역사관은 완공된 지 1년3개월이 지났지만 광복 70주년을 맞는 오는 15일에도 문을 열지 못한다. 관람객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고 관장과 직원 채용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하지만 본지 취재 결과 역사관을 운영할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의 임원 선출 방식을 두고 중앙부처와 민간단체가 소송전을 벌이면서 개관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역사관 건립은 국무총리실 산하 ‘대일 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자 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추진했다. 일제 강점기 때 강제 동원 피해 사례를 조사하고 추모사업을 진행하는 조직이다.

 위원회는 2012년 3월 역사관 운영 등의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조직으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을 설립한 뒤 피해자 유족단체들을 중심으로 재단 준비위원회를 꾸렸다. 행정자치부(당시 안전행정부)는 유족 31명을 준비위원으로 위촉했다.

 문제는 재단 임원진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임원을 먼저 선정한 뒤 행자부의 승인을 받는 방식으로 조직을 꾸리겠다”는 준비위 결정과 달리 안전행정부가 이사를 자체적으로 임명하면서다.

 이에 반발한 준비위 위원들은 지난해 서울행정법원에 행 자 부 장관을 상대로 ‘임원 임명 행위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지난 2월 “행자부 장관의 이사 임명은 모두 무효”라고 판결하며 준비위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행자부가 항소하면서 소송전은 2라운드에 접어든 상태다. 항소심 판결은 다음달께 나올 예정이다.

 소송이 진행되면서 역사관 개관은 계속 미뤄졌다. 현재 오는 10월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소송이 대법원까지 가게 될 경우 연내 개관은 힘들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런 가운데서도 역사관 운영비로 매달 4000만원의 세금이 꼬박꼬박 쓰이고 있다. 재단 측은 “임원진이 구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역사관의 문을 열 수 없다”며 “소송이 조속히 마무리돼 광복 70주년인 올해 안에는 개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부산=차상은 기자 chazz@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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