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평화 오디세이 릴레이 기고

(9) 통합되어야 통일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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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

이제 세 번째. 처음에는 먹먹했고, 두 번째는 답답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측 국경도시 단둥에서 바라본 북한의 모습은 그렇게 다가왔다. 남북 체제 경쟁의 성과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활용되는 한반도 위성사진. 하늘에서 내려다본 한반도의 밤은 허리 삭둑 잘린 섬이다. 수년 전, 중국 단둥에서 처음 바라본 그곳의 밤은 불빛 하나 새어나오지 않는 아득한 암흑 세상. 31명의 한국인 오디세우스들과 함께 세 번째 찾은 단둥에서 본 강 너머의 북한은 여전히 가늠할 수 없는 침묵의 암흑 속에 갇혀 있다.

릴레이 기고 ⑨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

불야성을 이룬 중국 국경도시 단둥의 밤이 더 환한 것은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강 저편의 칠흑 같은 어둠 때문이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자괴감과 허탈감 때문에 오디세우스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백두산 천지에 올라 그 태고적 장엄함에 숙연해 졌지만, 장백산에서 천지를 바라보아야 하는 그 허탈감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과거 중국 단둥은 북한 신의주 덕분에 먹고사는 도시였는데 요즘은 완전히 역전됐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불야성인 단둥(왼쪽)과 적막한 신의주.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압록강에서 두만강까지 이어지는 1400㎞의 평화 오디세이 대장정 내내, 오디세우스들은 강 저편 북한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안타까운 몸짓을 했다. 그때마다 오디세우스를 가로막고 나선 중국 군인들. 북·중 경제합작지역인 황금평이 그랬고, 고구려 전성기를 구가했던 국내성 터였던 지안에서 코앞의 북쪽 지역을 단체로 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두만강이 동해로 흘러가기 전 마지막 몸부림을 치는 훈춘에선 무장한 군인이 버스에 올라 취재기자의 카메라를 수색했다. 북한에 생명선을 공급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국가의 법적 강제력의 한계가 서로 만나는 접경 지역의 긴강감은 팽팽했다. 유럽에서 차를 타고 국경을 넘나들 때는 상상도 못했던 긴장감이다. 이 지역을 지나가는 한국인들이 찍은 북한의 모습이 인터넷에 떠돈다는 북한 측의 항의 때문이란다. 탈북자 때문이라고도 한다. 통일돼 1400km 국경(지금 비무장지대는 250km에 조금 못 미친다)을 중국과 (아주 조금은 러시아와) 마주할 그때의 상상에 빠진다. 그러나 바람소리는 금방 분단의 현실로 오디세우스를 깨운다.

 얼마나 더 세월이 흘러 통일이 도둑같이 찾아올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언제까지 이럴 수 없다는 것이다. 통일에만 매몰돼 통합을 고민하지 못하면 통일은 고통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남북전쟁을 거쳐 통일된 국가를 건설한 미국을 보라. 남북전쟁이 끝난 지 한 세기 반이 흘렀지만 아직도 심각한 인종 갈등을 겪고 있다. 우리가 닮고 싶어하는 독일의 통일 역시 동독과 서독의 사회통합은 결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남북 경제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 개성공단을 국제화하고, 남북 FTA를 추진해 보자.

 개성공단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있지만 북한 주민에게 이보다 더 확실하게 시장경제를 알게 해주는 것도 없으리라. 개성공단 근로자 5만 명이면 북한 주민 20만 명이 시장경제권에 들어온 셈이다. 남북관계가 요동칠 때마다 북한 정권은 개성공단을 인질로 삼고 전략적 우위를 점하고 싶어 하지만, 자기 살점을 잘라내는 자충수임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이 윈윈하는 방법은 북한 스스로 그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장치를 만드는 것. 개성공단을 남북 프로젝트가 아닌 국제 프로젝트로 하여 중국, 일본, 홍콩, 싱가포르, 독일, 미국 등 세계 각국의 투자를 유치하는 전략적 공간으로 변모시키면 된다. 국제투자지역이 되면 북한의 일방적인 손바닥 뒤집기는 더 어려워진다. 개성공단은 더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다음 단계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 남북 FTA는 남쪽의 자원과 기술, 경제개발 경험을 북한의 인적·지리적 자원에 접목하는 포괄적 경제협력 협정을 목표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백두산에서 발원한 압록강은 서해로 흐르고 두만강은 동해로 흐르지만, 내내 한 방향으로 바다를 향해 내달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 강은 남으로, 북으로, 때로는 정 반대 방향으로 흐르기도 했다. 험한 계곡을 돌고, 절벽에 부딪치고 거센 돌부리에 속도가 느려지지만 기어코 바다로 도달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한국이 적극적으로 먼저 나서지 않으면 북한이 한국을 빼고 다른 국가들에 기회를 주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남북 경제 격차 해소를 위한 한국의 적극적 행보는 북한과 국제사회에 통합과 통일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단단한 빗장이 한 번 제의에 쉽게 열리지는 않겠지만, 의지와 전략을 가지고 꾸준히 추진하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현상유지가 아니라 오히려 후퇴임을 명심해야 한다. 분단 70년, 언제까지 섬으로만 살 순 없지 않은가.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