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 없는 혼례굿 … “평화야, 통일아 부디 만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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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왜 아직도 신랑이 안 왔느냐.”

 풍물패가 신명나는 길놀이로 혼례의 시작을 알린 지 한참이 지났지만 신랑은 보이지 않았다. 신부 아버지 ‘맹 진사’는 속이 타고, 혼례식 사회를 맡은 마름 ‘갑순’은 시간을 끌기 위해 미얀마·필리핀 등에서 온 예술가들의 축하 공연을 주선한다.

 9일 인천 강화 평화전망대에서 펼쳐진 ‘새로운 출발-혼례굿’은 남북 분단을 빗대 묘사한 연희극 ‘신랑 없는 결혼식’으로 시작됐다. 이날 공연은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가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9∼14일 민통선 지역 내 강화군·고성군·철원군 등 3곳에서 펼치는 ‘DMZ 평화예술제’의 첫 행사다. 김봉렬 한예종 총장은 “분단과 아픔의 상징 지역에서 펼쳐지는 이번 예술제는 화합과 평화의 메시지를 예술적 방법으로 전달해 광복 70년의 참 의미를 되새기는 평화통일 기원의 장이 될 것”이라며 “당초 북한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과의 협업을 추진했으나 이는 무산됐다”고 말했다.

 ‘DMZ 평화예술제’의 출연진인 ‘평화원정대’는 한예종 졸업생·재학생뿐 아니라 브루나이·인도네시아·미얀마·필리핀·베트남 등 5개국에서 온 예술가 39명을 포함해 100명의 아시아 신진 예술가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12일 오후 3시 휴전선 최동북단에 위치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북한 땅인 금강산·해금강을 바라보며 통일을 기원하는 ‘통일염원굿’을 펼친다. 전쟁으로 희생된 분들을 위한 위령제를 시작으로 통일의 의지를 다지는 클래식 공연을 이어갈 계획이다.

 14일 오후 8시엔 포탄으로 건물이 파손돼 동족상잔의 비극을 보여주는 철원 노동당사 앞에서 ‘평화기원제’를 열어 ‘DMZ 평화예술제’의 대미를 장식한다. 남북의 만남을 묘사한 줄타기 퍼포먼스, 전쟁의 참상을 표현하는 LDP무용단의 ‘노 코멘트’, 김남윤 한국예술영재교육원장이 지휘하는 ‘영재 70인조 바이올린 오케스트라’, 통일과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평화기원판굿’ 등이 차례로 무대에 오르는 행사다. 또 무대 배경인 노동당사를 미디어파사드를 통해 아름답게도, 혹은 슬프게도 묘사하며 시각적 효과를 더할 예정이다.

 9일 공연은 관객 중에서 신랑을 찾아 혼례를 치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주례 격인 ‘길눈이’ 역으로 등장한 김 총장은 “평화야, 통일아. 부디 만나자”를 소리 높여 외쳤다. 축하 공연차 출연한 베트남 전통악기 연주자 쾅 쥐(30)는 “베트남도 분단의 아픔을 겪었지만 이제 통일을 이뤘다. 한국도 언젠가는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공연을 지켜본 구홍교(경기 남양주 도농중1)군도 “빨리 통일이 돼 남북이 같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전했다.

강화=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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