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영화천국] 카메오…'땅콩'서 VIP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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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비디오로 출시된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봤다. NRG의 멤버 이성진이 카메오로 나온다고 하던데 누구인지 모르겠다. 카메오에 대해 알려달라.

A: 그 영화에서 이성진이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그 맘, 십분 이해한다. 솔직히 기자도 시사회가 끝나고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

김하늘을 울렸다고 권상우한테 눈탱이가 밤탱이 되도록 흠씬 얻어터지는 신부 역이다. 모범생 가르마에 까만 뿔테 안경을 껴서 당최 성진스럽지 않다. 단번에 알아보신 분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을 따름이다.

카메오(cameo)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유명 배우나 유명 인사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잠깐 단역으로 등장하는 것을 말한다. 톰 크루즈.브리트니 스피어스.스티븐 스필버그가 '오스틴 파워3'에 나온다든가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 시장과 테니스 악동 존 매켄로가 '성질 죽이기'에 얼굴을 내미는 식이다.

여기서 '유명한'은 카메오의 필요 조건이다. 가령 이 칼럼을 쓰는 기자나 감독 옆집에 사는 인택 엄마가 잠깐 출연한다고 해서 그것을 카메오라고 부르진 않는다는 얘기다.

혹 그때까지 수마(睡魔)와 싸우고 있었을지도 모를 관객들의 오감(五感)을 화알짝 열어줄 스타가 아니고서는 진정한 카메오라 할 수 없다. 카메오라는 말이 처음 쓰인 영화가 무엇인지 궁금하겠지만 불행히도 어디를 뒤져봐도 공식 기록은 없다.

원래 연극에서 쓰인 말이라고 한다. 다만 1940년대부터 자기 작품에 빠짐없이 얼굴을 내밀었던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이 카메오라는 말을 널리 퍼뜨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맞다.

여담이지만 히치콕이 자신의 작품에 출연한 것은 불만스럽다. 왜냐면 히치콕이 어디 나오는지 찾다 보면 작품에 집중을 할 수가 없으니까 (게다가 못 찾으면 찜찜하기까지!).

어쨌든 카메오는 심심풀이 땅콩으로 출발한 듯하지만 오늘날 국빈 대접을 받기에 이르렀다. 특히 한국 영화계에 코미디 바람이 불면서 알프레도에서 일약 세바스찬으로 신분 상승했다. 스타의 깜짝 출연은 홍보는 물론 폭소 유발에도 큰 몫을 하기 때문이다.

카메오는 스타들의 친분 덕에 이뤄지는 '우정 출연'이 많다. 13일 개봉하는 '역전에 산다'에 임창정이 파출소 순경으로 나오는 건 '색즉시공'의 상대역이었던 하지원에 대한 의리 때문이다.

하지원과 파출소에 앉아 있는 김승우에게 "뭘봐, 이 ××야, 너 간통으로 들어왔지?"하다가 갑자기 그를 알아보고 "아니, 골프 치는 강승완 선수 아니십니까. 사인해주십시오"라고 설레발을 치는 이 부분은 단언컨대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웃긴다.

이 장면은 임창정의 즉석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우정인지 애정인지, 아니면 애증인지 알쏭달쏭한 카메오가 있으니 27일 개봉하는 '미녀 삼총사-맥시멈 스피드'의 브루스 윌리스다. 13년 살고 3년 전 이혼한 아내 데미 무어가 이 영화에 출연하는데, 전처의 부탁으로 나오게 됐다니 참 남녀 사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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