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점이 없어 고민인 두산 허경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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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두산에서 가장 방망이에 공을 잘 맞히는 타자는 누구일까. 정답은 내야수 허경민(25)이다. 허경민은 올스타 휴식기 이후 열린 12경기에서 타율 0.327을 기록하며 17개의 안타를 때려냈다. 안타는 팀내 1위, 타율은 2위다. 좋은 타격감 덕분에 타순도 향상됐다. 주로 7번을 맡았던 허경민은 지난달 22일 SK전부터는 2번타자로 나서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1일 잠실 삼성전에서는 민병헌이 빠진 사이 톱타자로 나왔다. 1번으로 나선 2경기 성적은 8타수 3안타. 김태형 두산 감독도 "허경민이 1번타자로서 손색이 없다"는 호평을 했다.

사실 시즌 초만 해도 허경민의 전망은 밝지 않았다. 두산이 외국인 타자로 내야수 잭 루츠를 영입했기 때문이다. 내야 전 포지션을 커버할 수 있지만 허경민이 2루수 오재원-3루수 루츠-유격수 김재호라는 주전들의 벽을 뚫기 어려워보였다. 실제로 5월 17일까지는 팀이 36경기를 치르는 동안 4번 선발로 나섰을 뿐 주로 벤치를 지켜야 했다.

하지만 루츠가 부상 등으로 빠진 사이 기회를 잡은 허경민은 실력으로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1일까지 타율은 깔끔한 수비와 날카로운 타격을 뽐내면서 어느새 3루를 차지했다. 규정타석에는 모자라지만 시즌 타율도 데뷔 후 가장 높은 0.319를 기록하고 있다. 허경민의 활약에 고교 시절 동기생인 오지환(LG)·김상수(삼성)·안치홍(경찰)과 함께 평가받은 '4대 유격수'란 타이틀도 다시 한 번 회자될 정도다. 만능 내야수에 스피드도 갖췄지만 "나는 장점이 없어 고민"이라는 허경민을 지난 2일 잠실에서 만났다.

-최근 1번타자로도 나섰다.

"다른 타자들이 1번으로 갔을 때 보면 출루나 공을 많이 봐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결과가 좋지 않더라. (김)상수도 1번에 가면 힘들어하더라. '하던대로 하고, 안 맞으면 내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특별히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부담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하던대로 해야 좋을 거 같았다. 사실 내가 1번이라고 해서 이용규(한화) 선배처럼 공을 많이 던지게 하는 스타일은 아니니까 적극적으로 쳤다."(허경민은 민병헌이 복귀한 2일 경기부터는 다시 2번으로 돌아갔다.)

-올 시즌 3분의 2정도가 지났다. 중간 평가를 한다면.

"점수를 매길 수 없을 것 같다. 내 커리어가 다른 선수들처럼 높은 것도 아니지 않나. 사실 올시즌이 어떻게 끝날지 나도 결과가 궁금하다. 올해 결과가 나온 상태에서 (앞으로의)목표치를 정해야할 것 같다. 가장 많이 나간 게 2013년인데 아직은 기준에 모자라서 점수는 못 주겠다."

-요즘 성적이 좋아서 2008년 세계청소년 선수권에서 활약한 '4대 유격수' 이야기도 자주 나온다. 솔직한 기분은.

"좋진 않다. 비교를 당하는 것 같아서. 그 친구들은 그 친구 나름대로 잘 해서 자리를 잡은 것이고 나는 아직 자리는 잡아가는 입장이다. 과거에 대한 기준으로 평가받는 게 좀 그렇다. 한편으로는 그런 친구들과 같이 했다는 것이니까 기분이 좋은데 평가를 받기에는 아직인 것 같다. 그 친구들만큼 뛰고 평가받고 싶다. 요즘에 잘 한다는 평가도 있지만 사람들이 보는 내 기준치가 낮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허경민이 생각하는 '나의 장점'을 찾았나.

"내 장점이자 단점일 수도 있는데 솔직히 뭐 하나 확실히 잘 하는 게 없다. 코치님한테도 '내 장점을 모르겠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내 플레이를 봐주시는 분들이 평가를 내려주시면 좋을 것 같다. 사실 요즘 잘 하는 것으로 만족할 순 없다. '허경민, 잠깐 잘 하고 내려갔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올 시즌이 끝난 뒤 '2015년 허경민이 잘 했다'는 평가가 나오면 기분좋을 것 같다."

-올 시즌 주전을 차지하기 어려울 것처럼 보였는데.

"마음에 달린 것 같다. 스프링 캠프 때 자리가 어느 정도 정해졌다. 기사로도 봤고, 훈련을 하면서도 (내 자리가 없다는 걸)느꼈다. 하지만 내가 마음을 놓지만 않는다면 기회가 올 거라 봤다. 올해부터 경기수가 늘어났는데 144경기를 뛸 수 있는 선수는 한 두명 아닌가. 틈이 있을 때 그 틈이 느껴지지 않게 하려면 준비를 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덕분에 지금 정도 할 수 있는 것 같다."

-더운 여름이다. 배트 무게나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나.

"나는 처음부터 무거운 배트를 안 써서 방망이 무게는 큰 변화가 없다. 나는 장타자가 아니니까. 지금도 처음 무게 그대로다. 850~860g 짜리를 쓰는데 공이 빠른 투수를 상대하거나 내 컨디션이 안 좋을 때만 조금 낮춘다. 체중은 많이 줄었다. 시즌 초보다 4㎏ 줄어서 지금은 75㎏ 정도다. 경기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체중이 줄었다. 나는 경기에 나갈 때는 긴장도 많이 하는 편이고 식사도 잘 못해서 저절로 줄었다. 지금의 몸무게가 적정일 수도 있으니까 걱정하지는 않는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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