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경영은 무조건 나쁜 시스템?

중앙일보

입력

‘막장극’을 연상시키는 롯데의 경영권 분쟁을 빼 놓고는 요즘 뉴스를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롯데가 한ㆍ일 양국에서 사업을 하다 보니 양국 언론의 관심을 모두 받고 있는데요. 사실 일본에서는 롯데 사태가 기시감을 주는 사건입니다.

올해 초 일본의 대표 가구회사인 ‘오오츠카(大塚)’ 가구 경영권을 놓고 창업주인 아버지 오오츠카 카츠히사(大塚勝久) 회장과 그의 장녀 쿠미코(久美子)가 한 판 붙었습니다. 2월 25일, 카츠히사 회장은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딸을 향해 “사장 선임을 잘못했다”, “이대로 가면 유능한 직원들이 회사를 떠난다”는 등의 경영 능력을 비난하는 말에 더해, “나쁜 애(惡い子供)를 키웠다”는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퍼부었습니다.

다음 날(26일) 쿠미코 사장 역시 기자회견을 열어 “아버지의 경영방식으로는 회사의 미래가 없다”고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여러 차례 말씀을 나눴지만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며 아버지와의 대결에서 물러날 뜻이 없음을 명백히 했죠.

오오츠카 가구는 1969년에 설립된 일본 대표 가구 회사입니다. 고급 가구를 표방하며 철저한 ‘회원제 운영’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2009년 취임한 쿠미코 사장은 “이케아와 니토리(일본판 이케아) 같은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저가 대중화 트렌드’로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회원제 같은 전통의 운영방식을 대폭 줄이고 ‘누구나 손쉽게 접근 가능한 새로운 오오츠카’를 모토로 체질을 바꿨습니다.

창업 정신을 부정하는 딸의 행보에 아버지는 분노했고, 지난해 7월 주주총회에서 카츠히사 회장은 압도적인 지분(18.04%)을 앞세워 지분이 9.75%에 그치는 딸을 사장 자리에서 해임하고 자신이 다시 사장에 복귀했습니다. 그렇지만 올 1월 딸은 실적에 불만을 품은 주주들을 규합해 아버지를 사장 자리에서 다시 몰아냈습니다.

그리고 3월 27일 오오츠카 주주총회가 열렸습니다. 표 대결 결과 딸이 주주 61%의 지지를 얻어 승리했습니다. 오오츠카 일가의 지분을 제외한 일반 주주의 80%가 딸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실적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다시 사장 자리를 꿰찼던 지난해 하반기 실적이 120억원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주주들은 ‘전통’을 고집하기보다는 ‘변화’를 통해 어쨌든 ‘돈 버는’ 회사를 만드는 딸을 선택했습니다.

잇단 재벌가의 경영권 분쟁 막장극에 가족 경영에 대한 반감이 높아진 상황입니다. 그런데 4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은 “최근 오오츠카 가구와 롯데에서 벌어진 부모와 형제간의 골육 싸움에 가족 경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높아졌다”며 “그러나 실증 연구에 따르면 가족 경영이 전문 경영에 비해 성과가 더 좋다”고 보도했습니다.

신문은 2013년 교토산업대학의 심정욱 교수가 발표한 연구 결과를 언급했습니다. 일본 상장기업 1000여 개를 대상으로 한 연구인데, 이에 따르면 매출 성장률뿐 아니라 총자산이익률(ROA) 등에서도 가족 경영 회사가 전문경영 회사의 성과를 웃돌았습니다. 그것도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40년 가까이 장기로 봤을 때도 그렇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특히 가족경영 기업 중에서도 경영자의 유형에 따라 성과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는데요. 가장 성과가 좋은 곳은 이른바 데릴사위(혹은 양자)가 이끄는 기업이었습니다. 전문경영인이나 창업주의 직계(아들ㆍ딸)가 아니라, 창업 가문의 일원이기는 하지만 혈연 관계는 없는 데릴 사위나 양자가 경영을 맡았을 때 가장 좋은 성과를 올렸다고 합니다. 심 교수는 “가족 경영의 약점은 후계자 선택의 폭이 제한되는 것”이라며 “그러나 사내·외 인재를 창업가문의 데릴사위로 영입하면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가족경영의 성과가 좋은 것은 전문 경영의 폐단인 단기주의를 극복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를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기업 스즈키의 스즈키 오사무(鈴木修) 회장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데릴 사위 경영자입니다. 그는 약 40년 전 사장 취임 직후 “어차피 수십 년 동안 사장을 맡을 텐데 큰 이익을 내는 데 집착하기보다는 꾸준한 설비 투자를 통해 스즈키를 훌륭한 회사로 키워 다음 세대에 넘기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고 말했다고 하네요.

이렇게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을 키울 수 있는 것이 가족 경영의 강점입니다. 신문은 딜로이트컨설팅 관계자의 말을 인용, “많은 일본 기업 경영자들이 자신의 임기와 비슷한 중기 경영 계획만을 중시하는 ‘중계병’에 걸려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롯데 사태로 가족경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매우 커진 상황입니다. 가족 경영이 무조건 옳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주주자본주의가 정답도 아닐 겁니다. 이번 기회에 가족경영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개선방안에 대해 고민해 보면 어떨까요.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ps. 한국에서는 사위가 경영을 맡았던 대표적인 사례가 (공교롭게도) 동양그룹이네요.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은 횡령ㆍ배임 등의 혐으로 최근 7년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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