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영국, 숨진지 10년 된 총리의 아동 성추행도 수사

중앙일보

입력

1970년대 초반 영국 총리를 지낸 에드워드 히스 경은 2005년 89세로 숨졌다. 그는 네 명의 미혼 총리 중 한 명이었다. 이 때문에 성적 취향을 두고 다양한 추측이 나왔다. 특히 동성애자일 가능성이 거론되곤 했다. 그러나 그가 숨진 지 10년 만에 소아성애자일 수 있으며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이를 인지하고도 숨겼다는 증언이 나왔다. 영국 당국이 곧 공개 수사에 돌입했다.

독립기구인 경찰불만처리위원회(IPCC)는 3일(현지시간) 1990년대 경찰이 한 범죄 사건을 수사하던 중 피의자가 히스 전 총리의 소아 성애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위협하자 소를 중단했다는 한 전직 경찰관의 진술을 공개하고 당시 과정을 조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년 전 은폐 의혹을 살펴보겠다는 얘기다.

영국 사회에선 ‘VIP(주요 인물)에 의한 아동 성범죄’ 트라우마가 있다. 영국 BBC 방송의 간판 진행자로 오랜 사랑을 받았던 지미 새빌이 숨진 지 1년 만인 2012년부터 아동 성추행 상습범이었다는 사실이 터져나오면서다. IPCC 차원에서 76명의 정치인을 포함, 261명의 공인들에 대한 유사 혐의를 조사 중이기도 하다.

히스경 건으로 이젠 ‘공인’의 수위가 총리까지 올라간 셈이다. 더타임스는 “소아성애 의혹을 받는 인사론 최고위급”이라고 보도했다.

관할인 윌트셔 경찰도 자제 공개 수사를 돌입했다. 션 메모리 경정은 “히스 전 총리로부터 아동성학대를 당했을 가능성이 있거나 경찰 수사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있는 사람은 경찰에 부디 알려달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사건이든, 과거 사건이든 상관없이 모든 아동 성학대 사건을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범죄사실 증거가 있다면 철저하고 상세한 수사를 통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디언은 이와 관련 “이젠 중년이 된 남성이 경찰에 소년 시절 히스로부터 수 차례에 걸쳐 성추행을 당했다고 증언했다”고 전했다.

히스 전 총리는 자수성가한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옥스퍼드대를 나왔다. 1965년 보수당 당수에 오른 뒤 1970∼1974년 총리를 지냈다. 영국의 유럽 편입을 결정했다. 재임 기간 내내 노조와 충돌하곤 했다. 자신이 발탁한 마거릿 대처 전 총리에 의해 결국 밀려났으며 이로 인해 마지막까지도 대처 전 총리를 용서하지 않았다.

이번 의혹에 대해 에드워드히스자선재단은 성명을 내고 “윌트셔 경찰의 수사를 환영한다”며 “경찰 수사를 통해 히스 전 총리의 누명이 벗겨질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으며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