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처벌’ 경제인은 사면해 규제 혁신의 계기 삼아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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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호 08면

사면은 엄밀히 말해 법치주의에 어긋난다. 그럼에도 헌법이 대통령에게 사면권을 부여한 것은 대통령이 사면이라는 정책수단을 통해 국가를 더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면이 국민의 법 순응 수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다양한 연구 결과가 있다. 일반적으로 사면을 자주 하면 국민의 법 순응도가 떨어지는 반면, 적절한 시기에 간혹 행해지는 사면은 국민의 법 순응도를 오히려 높인다고 알려져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특별사면을 고려하고 있다. 지난 정부의 사면권 행사 횟수는 이명박 정부 7회, 노무현 정부 8회다. 반면 박근혜 정부는 집권 중반기에 달하는 지금까지 단 1회만 사면권을 행사했다. 지난 정부에 비해 현저히 적다. 박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가 국민의 법 순응수준을 오히려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다. 지금 박근혜 정부의 사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면정책에 대통령의 통치철학이 담겨야 한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가 내건 핵심 국정 기조는 ‘규제 혁신’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사면은 사면대상에 누가 포함되는가에 초점을 둔 정치게임이 아닌, 대통령이 오래전부터 강조한 ‘규제 혁신’의 틀 안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2010년 기준으로 15세 이상 인구 중에서 4명 중 한 명이 벌금 이상 형벌을 받은 전과자인 사회가 한국이다. 유독 한국인의 법의식이 낮아 범법행위를 마구 저질렀기 때문일까. 이 심각한 통계치의 근본적인 원인은 준법의식 문제가 아니라 한국에서 형법을 너무 포괄적으로 적용한 데 있다. 자유시장경제 체제하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적 영역의 경제행위를 공법, 즉 형벌로 다스리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다.

 국가가 형법으로 시장경제에 개입하려는 논리는 ‘규제’다. 민간 부문의 무분별한 경제행위로 인해 사회정의 및 경제질서가 무너지므로, 정부가 나서 규제해야 한다는 논리다. 사적 영역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규제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그 수단이 꼭 형법이어야 하는가이다. 사적 경제행위에서 벌어진 잘못과 책임문제는 피해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음에도 정부가 개입해 형법으로 처벌함으로써 불필요한 전과자를 양산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배임죄’다. 기업가들의 경제행위에 대해 국가는 배임죄란 공법을 통해 감시하고 처벌한다.

 문제는 배임죄의 정의와 위법행위의 내용이 추상적이어서, 누구든지 배임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기업을 경영하고 사업을 하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전과자가 되는 것이 우리의 씁쓸한 현실이다. 이런 예는 비일비재하다. 민간의 경제행위를 규제하고 이를 위반하는 ‘규제범죄’를 형벌로 처벌하는 ‘과잉범죄화’ 속에서 4명 중 한 명뿐 아닌 누구나 잠재적 전과자가 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

 박근혜 정부의 사면은 ‘과잉범죄화’로 인해 발생한 많은 전과자를 사면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들의 사면과 함께 규제범죄에 대해 국가가 개입하는 공법 적용을 최소화하는 개혁을 병행해야 한다. 사적 거래상의 책임소재는 당사자 간 손해배상 차원에서 해결하게 하고, 형법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

 사면에 있어 논란 중 하나가 기업인의 사면 대상 포함 여부다. 기업활동에 과도한 규제를 하고 위반 시 형법을 적용하는 과잉범죄화로 인해 전과자가 된 기업인은 당연히 사면대상에 포함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유전무죄’라는 과거 그릇된 관행과 이에 따른 통념이 굳어지다 보니, 기업인에 대한 사면을 이 연장선에서 죄악시한다. 그러나 이제는 기업인이기 때문에 국민정서를 고려해 가혹하게 처벌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사례들도 나타나고 있다. 봐주기가 안 되는 것처럼 역차별도 안 된다.

 기업가는 우리 경제발전에서 소중한 자산이다. 이들을 감옥에 가둠으로써 잃게 되는 사회비용을 생각해야 한다. 시장경제는 기업에 의해 굴러간다. 그래서 시장경제는 기업경제와 동의어다. 특히 기업의 성공에는 반드시 기업가정신을 가진 기업가가 필요하다. 한국이 발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자산이 ‘기업가’다. 이런 소중한 자산을 사면 대상에서 제외한다면 일시적으로 국민 감성을 만족시킬 수 있겠으나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비용을 가장 고단하게 치러야 하는 대상이 국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면에 있어 꼭 기억해야 할 점이다.

현진권 자유경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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