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중·일관계 개선은 위기 아닌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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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맞아 잠시 일본을 다녀왔다. 무더위에도 곳곳마다 중국 관광객이 넘쳐났다. 도쿄 중심가인 긴자나 신주쿠 등은 물론 멀리 홋카이도의 산촌 관광지까지 중국 관광객의 행렬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의 영향이긴 하지만 서울 거리에서 중국 방문객들이 부쩍 뜸해진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광경이었다. 일본정부 관광국 통계에 의하면 일본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올 들어 6월까지 217만명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116%가 늘었다. 한국과 대만을 제쳤다. 엔저의 영향에 의해 일본 관광이 손쉬워진 측면도 있다. 그런데 필자의 눈에는 일본을 찾는 중국 관광객 급증이 요즘 들어 뚜렷해진 중·일 관계 개선을 반영하는 장면으로도 비추어졌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중국과 일본 간에는 센가쿠(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영유권 문제, 그리고 아베 신조 정부의 역사인식 문제를 둘러싼 갈등들이 겹치면서 양국 간 정상회담은 물론 여러 분야의 정부 간 대화 채널이 중단된 상태였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아베 총리가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이후 양국 관계가 현저하게 회복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상회담 이후 지난 2~3년간 중단되어 왔던 양국 간 고위급 해양문제 협의, 해상 및 항공 핫라인 구축을 위한 실무급 회의, 외교 및 국방당국자가 참가하는 안보대화, 과학기술 분야의 협력방안을 논의하는 양국간 과학기술협의회, 그리고 재무 당국 간의 재무대화 등이 연이어 개최되었다. 일본 자민당과 중국 공산당 간의 회의도 재개된 바 있다. 지난 4월 아베 총리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시 주석과 다시 한번 정상회담을 했다.

그에 더해 아베 총리는 오는 9월3일 중국에서 개최되는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16~17일 아베 총리의 최측근인 야치 쇼타로 내각 국가안보국장이 베이징을 방문하여 리커창 총리, 양제츠 국무위원을 비롯한 중국 측 요인들과 접촉했다. 이는 9월 아베 총리의 방중 문제를 사전 협의하기 위한 준비작업이었다. 지난해 11월 아베 총리의 방중 이전에도 야치 국가안보국장이 미리 중국을 방문, 사전 정지작업을 해둔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안보관련 법제 강행 통과로 말미암아 국내 지지율이 하락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아베 총리는 전격적인 방중을 통해 중·일 화해의 극적인 외교이벤트를 연출함으로써 국내적으로는 지지율 반등을 꾀하고, 국제적으로는 지역안정에 기여하는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보이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중·일 간 관계개선 기조는 우리의 외교안보정책에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필자는 일본과 중국이 상호 대화와 협력의 기조를 회복하고 있는 것은 한국으로서도 지역안정을 위해서나 북한에 대한 공동의 대응을 강구하는 차원에서 다행스런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회에 우리도 그간 경색상태를 보여왔던 한·일관계에 대해 보다 유연한 대응을 취하고, 국가안보전략의 일환이기도 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구체적인 정책 수준에서 제안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박근혜 대통령이 준비하고 있을 8·15 담화에 동북아 차원의 미래지향적인 신뢰구축과 협력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 어젠다를 제시하고, 이를 논의하기 위한 한·중·일 정상회담의 연내 개최를 강력하게 제안한다면 어떨까? 이미 중·일 양국이 논의 중인 해양안보협력을 한·중·일 차원으로 확대하거나, 3국 간 환경·관광·문화·교육 분야에서의 협력 증대 방안 등이 구체적인 어젠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는 8·15 담화에 이러한 동북아 평화협력의 적극적 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증진시킬 뿐 아니라 상생공영의 지역질서를 구축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박영준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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