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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야권 신당 기상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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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난 22일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실. ‘창당 60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첫 회의가 열렸다. 회의장 정면 벽에는 ‘역사와 정통성! 새로운 미래!’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당당하게’ 내걸려 있었다.

새정치연합이 당의 생일로 삼는 건 1955년 9월 18일, 이승만 정부 당시 ‘민주당’이 탄생한 날이다. 창당 60년 기업사업 추진위는 제1야당이 그동안 걸어온 역사와 정체성을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꾸려졌다.

이날 회의에는 권노갑·김원기 상임고문 등 당의 ‘어른’인 원로들도 여럿 자리를 함께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당 안팎에서 끊이지 않는 ‘분당론’ ‘신당론’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새정치연합에서 신당 논의가 본격화한 건 4·29 재·보선 이후다. 새정치연합이 광주 서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무소속 천정배 후보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 호남발 신당 논의에 방아쇠를 당겼다.

천 의원이 4월 재·보선 후 ‘뉴DJ(김대중)’ 영입 계획을 내놓으면서 야권 재편 논의는 힘을 얻기 시작했다. 여기에 최근 새정치연합 당직자 출신 인사들의 모임인 ‘국민희망시대’가 집단 탈당을 선언하면서 신당 논의에 가세했다.

이를 포함해 정대철 상임고문 그룹, 최근 탈당한 박준영 전 전남지사 그룹, 김동철 새정치연합 의원 주변에서 나오는 비노 연합 신당론 등 대여섯 개의 크고 작은 신당 논의가 동시다발적으로 굴러가고 있다. 신당 논의를 촉발한 천 의원은 지난달 29일 내친김에 “8월 말께 구체적 (신당)계획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천 의원은 ‘전국적 개혁 정당’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정대철 고문, 박준영 전 지사 측과의 연대에는 현재로선 소극적이다. 박 전 지사나 정 고문 등은 박주선 의원 등 야당 내 이탈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들과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각개약진식으로 신당을 추진하다 제2 야당의 큰 흐름에 각각 합류하는 방식이 거론되지만 아직까지는 모든 게 불투명한 상황이다. 결국 신당론엔 기회 요인 못지않게 위협 요인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야당의 주요 지지 기반인 호남에서 새정치연합의 ‘독점 체제’에 대한 반감이 커질 대로 커져 있다는 점은 신당파의 동력이 될 수 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이 양분해온 양당 체제에 대한 유권자들의 피로감도 플러스 요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적인 분위기가 적지 않다. “전국 정당을 추진한다”고는 하지만 영남권은 물론 충청권 등에서 참신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당장은 수도권도 마찬가지다. 야당 지지층에겐 신당의 등장이 내년 총선에서 야권 분열 요인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도 신당파에겐 부담이다. 무엇보다 강력한 구심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불확실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60년 야당사(史)에서 ‘대안 야당’을 기치로 제1 야당을 깨고 나온 신당의 궤적을 훑어보면 부침(浮沈)이 뚜렷했다. 87년 민주화운동기 이후 제1 야당에서 분화된 대안 야당은 지금까지 크게 세 차례 있었다. ‘분당을 통한 신당 창당’이 실제 총선 및 대선에서 어떤 결과를 냈는지를 성공 기준으로 삼는다면 지금까지의 전적은 1승 1무 1패로 요약된다.

①한 배에서 갈라져 나온 YS의 통일민주당과 DJ의 평화민주당=5공 시절인 80년대 초반 제1야당은 이민우 총재가 이끄는 신민당이었다. 하지만 이 총재가 전두환 정권에 타협적으로 기울자 YS(김영삼)와 DJ(김대중)가 87년 통일민주당을 창당했다. 그해 6월 헌법 개정이 이뤄져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됐지만 대선 후보 단일화가 무산되면서 DJ는 평화민주당을 따로 만들었다. 하지만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은 87년 대선에서 나란히 패배했다(1패).

②정권 교체 이뤄낸 DJ의 새정치국민회의=87년에 이어 92년 대선에서 다시 낙선한 DJ는 정계은퇴를 선언했고, 당시 민주당은 이기택 대표 관리 체제에 들어간다. 그런데 95년 DJ가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오면서 야권 지형이 급변했다. 동교동계가 민주당을 대거 탈당, 다시 DJ 휘하로 들어가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새정치국민회의는 97년 대선에서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으로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1승).

③열린우리당, 총선엔 승리, 정권 재창출은 실패=청와대에 입성한 DJ는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당명을 새천년민주당으로 바꿨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꺾으면서 재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대선 과정에서 벌어진 친노-반노 갈등은 분당으로 이어졌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지지그룹이던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트리오’와 김근태 의원 등은 2003년 집권 여당을 박차고 나왔다. 이들은 유시민계, 그리고 ‘독수리 5형제’라고 불리던 김부겸 전 의원 등 한나라당 탈당파와 힘을 합쳐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구민주계만 남은 새천년민주당은 한순간 야당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을 타고 단숨에 과반 1당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열린우리당도 오래가진 못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패하면서 당세가 급격히 기울더니 2007년 대선 국면에서 창당 주도 세력인 정동영 당시 의원 등이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헤쳐모였다. 이런 회오리 바람 속에 집권 여당을 깨고 나온 열린우리당은 창당 4년 만에 소멸하고 말았다.

제1야당의 역사는 이처럼 분화와 재통합의 반복이었다. 이 중엔 성공한 실험도 있고, 패배로 막을 내리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 사례 외에 DJ 같은 강력한 구심점이 없이 급조된 신당은 생존 가능성이 더 떨어졌다.

창당 선언까지 했지만 새 인물 영입에 속도를 내지 못하다 지난해 3월 민주당과 합당한 ‘안철수 신당’, 2010년 6월 지방선거 때 한화갑 한반도평화재단 총재가 만든 평화민주당, 2007년 대선을 두 달 앞두고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대표가 주도해 만든 창조한국당은 현재 형체도 남아 있지 않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내년 총선에서 새정치연합과 경쟁해 이길 수 있는, 정권 교체 가능성까지 충분한 전국 정당이 아니라면 성공 가능성은 낮을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S BOX] 비박·비노 손잡고 제3지대 창당? … “가능성 충분” “아이디어 차원”

최근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중도하차하면서 야권에서 흘러나오는 신당론에 또 하나의 시나리오가 생겼다. 개혁적 보수를 지향하는 새누리당 ‘비박계’와 온건한 진보를 주장하는 새정치연합 ‘비노’ 진영이 연합하는 제3지대 창당론이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내고 새정치연합 비상대책위원장 물망에까지 올랐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비박 성향 의원 중에서 개혁 성향을 지닌 수도권 의원들과 또는 현재 비노 의원 중에서 상당히 개혁 지향적이며 현재의 친박 대 친노라는 진영논리에 염증을 느끼는 분들이 공통된 성향을 갖고 있다. 제3당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비박계와 비노계 연대는 아이디어 차원에 그칠 거란 관측이 우세한 게 사실이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유승민 의원이 새누리당 유산을 벗어나 당장 탈당하기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구·위문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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