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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심재명 명필름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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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열무 삼십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오시네.

- 기형도(1960~89), ‘엄마걱정’ 중에서

내 인생 가장 소중한
엄마에게 바치는 연가

기형도 시인의 시 중에서 가장 서정적이고 인간적인 시고,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날 때마다 떠오르는 시다. 우리 엄마는 사랑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크셨고 돌아가신 후에도 정서적 이별이 너무 힘들었다. 어쨌든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셨다. 이제 나 자신이 딸을 기르는 엄마이고 여성으로서 정체성, 모성이라는 테마는 영화 제작자로서 주된 관심사이기도 하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명필름도 그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마당을 나온 암탉’ ‘카트’ 등을 통해 한국 사회 여성들의 삶에 대해 꾸준히 발언해 왔다.

 시 제목이 ‘엄마걱정’인데, 얼마 전 함께 시나리오 작업 중인 육상효 감독이 “누군가를 걱정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 걱정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 말에 크게 공감한다. 기형도 시인은 내가 대학 1학년일 때 오빠의 대학 학보(연세춘추)에서 당시 학생이던 그의 시 ‘식목제’를 읽으며 처음 알게 됐다. 이후 중앙일보 기자로 일한 것, 비극적인 최후까지 익히 보고 들었고 그래서 뛰어난 시인인 동시에 마치 같은 공간, 같은 시대를 함께 경험하고 견뎌낸 존재란 느낌이 강하다. 그의 가난, 유년의 기억, 자기 연민 등이 녹아나 깊은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시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