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메르스 추경, 법인세·상품권에 발목 잡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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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으로 가라앉은 내수를 살리기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이 국회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여야가 23일 예결위를 열기로 했지만 주요 쟁점을 둘러싼 입장 차가 여전해서 월내 처리를 장담하기 힘들다. 이미 정부에서 처음 요청한 시한인 20일을 넘겼다.

 역대 추경 가운데 이번처럼 국민적 합의 수준이 높은 추경은 드물다. 예기치 못한 메르스 사태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전통시장에서 백화점까지 길거리 경기가 꽁꽁 얼어붙었다. 여야 모두 신속한 처리를 다짐하며 논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법인세 정상화(인상)와 상품권 예산이 발목을 잡고 있다. 야당은 예산 편성 때 예상한 것보다 세수가 덜 걷히는 현상(세입 결손)이 4년째 계속되고 있다며 ‘책임 있는 당국자의 사과와 법인세 인상을 비롯한 대책’을 요구한다.

 이런 지적엔 일리가 있기는 하다. 이번 추경안의 절반에 가까운 5조6000억원이 세수 결손을 메꾸기 위한 세입 경정이다. 낙관적인 성장률에 바탕을 두고 세수를 부풀려 잡았다가 국채로 메꾸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책임 있는 당국자의 사과와 예산편성 방식의 개편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세입 결손을 곧바로 법인세 정상화(인상)와 연결 짓는 야당의 접근 방식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추경 심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법인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은 뚜렷이 나뉘어 있다. 재계에선 “투자 의욕을 꺾는다”며 강하게 반대한다. “법인세 인하가 투자와 고용으로 연결되지 않은 이상 세금으로라도 기업이 제 몫을 해야 한다”는 반론도 거세다. 정부와 여야 내부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상황을 빤히 아는 야당이 추경 통과의 조건으로 법인세를 내거는 것은 공연한 딴지 걸기로 비칠 수 있다.

 야당이 주도한 ‘상품권 예산’도 마찬가지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16일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에서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200여만 가구에 온누리상품권 10만원 상당을 지급하는 2140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처리했다. 야당은 “일본도 1999년과 올해 같은 방식의 부양책을 썼다”며 “메르스로 큰 타격을 입은 전통시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나눠준 상품권의 68%가 카드깡을 통해 소비가 아닌 저축으로 흘러갔다. 전형적인 포퓰리즘 사업”(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라는 반대 목소리가 크다. 뚜렷한 정책 효과를 입증하지 못하면 ‘발목 잡기’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

 야당의 문제 제기는 필요하다. 정책을 논의하는 출발점으로 추경을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나 검증이 부족한 사안으로 추경 처리를 늦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추경이 늦어질수록 고통받는 것은 야당이 강조하는 ‘서민과 중산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