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우리은행 지분 쪼개서 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정부가 우리은행을 몇몇 주주(과점 주주)에 지분을 쪼개 파는 방식으로 민영화하는 방안을 공식화했다. 다만 당장은 팔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경영권을 통째로 넘길 때 받을 ‘프리미엄’을 포기하겠다고 나선 셈이지만, 현재 시장 여건에선 그마저도 매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민영화의 관건은 떨어진 우리은행의 기업가치를 높이고, 과점주주군 내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할 투자자를 어떻게 ‘모셔오느냐’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공자위)는 21일 회의를 열고 ‘우리은행 민영화 추진방향’을 확정했다. 이날 공자위는 우리은행 민영화를 위해 예금보험공사가 가진 지분(51%) 중 30~40%를 4~10%씩 나눠 파는 방식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단일 지배주주가 아니라 소수 주주가 우리은행을 과점(寡占)지배하는 형태로 민영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남은 정부 지분은 민영화 이후 주가가 오를 때 시장에 팔아 공적자금 회수율을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물론 앞으로도 매수자만 나선다면 한꺼번에 경영권(30% 이상) 지분을 넘길 수도 있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하지만 매수자 입장에선 과점주주 내 핵심 투자자만 되면 사실상 우리은행을 지배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높은 프리미엄을 지불하며 한꺼번에 사들일 유인이 없다. 사실상 과점주주 매각 방식이 정부의 유일한 방안으로 부상한 셈이다.

 공자위는 이날 매각 시기를 특정하지는 못했다. 박상용 위원장은 “현재 확인된 투자 수요만으로 당장 매각을 추진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우리은행에 투입된 공적자금을 회수하려면 주가가 1만3000원대 중반은 돼야 하지만 현재는 1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매수 의지를 보이는 곳은 많지 않다. 과점주주 매각 방식의 성패는 주주군 내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할 장기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일이다. 전략적 투자자만 나타난다면 나머지는 국내 연기금, 사모펀드 등 재무적 투자자로 채울 수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박 위원장이 “매각 방식은 경쟁 입찰이지만 사실은 ‘모시는’ 문제”라고 표현한 이유다. 이를 위해 최근까지 공자위와 우리은행은 중동지역 국부펀드, 해외 주요 금융그룹 등을 접촉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은행산업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한데다, 우리은행만의 특수성도 작용했다. 박 위원장은 “투자 후보가 (민영화 이후에도) 정부가 계속해서 경영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날 정부가 우리은행의 경영 간섭을 줄이겠다고 밝히고 나선 것도 이런 ‘관치’ 우려를 줄여보자는 취지다.

 결국 우리은행 민영화는 주가의 반등, 그리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전략적 투자자를 끌어들일 수 있느냐에 달린 셈이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 임원은 “금융당국 차원을 넘어 정치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인사가 유력 후보나 해당국과 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jmi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