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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TV 시청 습관이 바뀌면 시청률 통계도 바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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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미국의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우리 삶은 습관 덩어리일 뿐이다”고 말했다. 2006년 미국 듀크대의 연구논문에 따르면 사람들이 매일 하는 행동의 40%는 의식적 선택이 아닌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TV 시청의 오래된 습관은 가정에서 방송 시간에 맞춰 TV를 시청하는 ‘본방사수’다. 우리나라는 1956년 TV 방송을 처음 시작했으니 근 60년이나 지속된 사회적 습관이다.

 그런데 주문형 비디오(VOD)가 등장하고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본방사수’ 습관에도 빠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환경에 힘입어 TV와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 방송과 VOD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프로그램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 방송매체이용행태조사에 따르면 유료방송 시청자 중 17.3%가 1주일에 한 번 이상 VOD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스마트폰 이용자의 25.8%는 1주일에 한 번 이상 스마트폰으로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방송사업자의 VOD 매출은 약 5400억원으로, 2012년의 2989억원에 비해 81%나 늘었다.

 이제 시청자들은 방송사가 제공하는 특정 채널들을 ‘본방’ 시간에 보는 것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원하는’ 시간에 시청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상파 채널의 황금 시간대에 편성되면 시청률이 담보된다는 믿음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콘텐트 자체의 경쟁력이다.

 미국에서는 ‘넷플릭스’라는 동영상 서비스 사이트를 통해 VOD로 제공된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라는 드라마가 에미상과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일으키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미드는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시작해 하우스 오브 카드로 끝난다”고 언급할 정도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성공은 비(非)실시간 방송 프로그램의 공급에서 ‘몰아 보기’ 시청 방법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었다. 이 드라마는 현재 시즌3까지 공개되었는데 매번 한꺼번에 13부작 전체를 공개함으로써 VOD 시청의 큰 특징인 ‘몰아 보기’ 시청에 최적화된 방법을 채택했다.

 국내에서도 방송 채널과 별도로 프로그램 단위로 시청할 수 있는 콘텐트 제작이 활발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터넷과 모바일에서 시청할 수 있는 ‘웹드라마’인데 대개 10~15분 정도로 기존 방송 드라마보다 짧고 편수도 적은 것이 특징이다. 웹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대기업과 지상파 방송사까지 제작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시청 행태의 변화에 따라 방송의 여론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시청점유율의 조사 방식이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행 시청점유율은 시청자가 전통적인 TV를 통해 실시간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한다는 것을 전제로 조사표본 가구에 있는 TV에 측정기기를 부착하여 각 채널의 시청 시간을 측정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 방식을 고수할 경우 어느 시점에는 시청점유율이 현실과 점점 멀어져 여론 영향력과 광고 집행의 준거는커녕 공허한 숫자가 될 우려도 있다. 다양한 시청기기를 통한 시청 시간과 VOD 시청 시간까지 포함한 통합시청점유율이 필요한 이유다. 이미 영국·독일·프랑스 등 많은 나라에서 TV의 실시간 시청 시간과 VOD 시청 시간을 통합한 자료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에서는 PC와 노트북, 태블릿 PC를 통한 실시간 시청 시간과 VOD 시청 시간까지 통합한 자료를 사용한다.

 정확한 통합시청점유율 산정 준비를 위해 방송통신위원회는 2014년도에 이어 올해 하반기에 TV뿐 아니라 PC와 스마트폰 및 VOD의 시청 시간에 대한 시범조사를 실시한다. 또 실시간 방송과 VOD의 시청 시간 합산 방안, 제도 개선에 필요한 법령 정비 방안 등 관련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통합시청점유율 도입을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VOD와 스마트폰 시청 시간 조사는 국제적으로 확립된 조사 방법이 없어 조사 결과에 대한 세심한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 또 현행 시청점유율을 대체하려면 방송업계의 폭넓은 공감대도 필요하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방송통신위원회는 제도 개선이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보고 있다. 시청점유율이 방송정책·규제뿐 아니라 광고비 산정이나 시청자의 수요에 맞춘 방송 콘텐트 제작 방식 개선을 위한 기초 데이터가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방송법은 특정 사업자의 시청점유율이 30%를 초과할 경우 여론 영향력이 지나치게 높다고 간주하여 방송사업 소유 제한, 방송 광고 시간 제한 등의 조치를 예정하고 있으므로 규제 타당성 확보를 위해서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인 조사 방법이 채택돼야 한다.

 인터넷·모바일 강국에 걸맞은 시청통계의 선진화를 통해 방송 및 광고산업의 성장 발판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정부는 물론이고 방송과 시청점유율 조사 분야의 모든 주체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