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의 ‘생각의 역습’] 가용성이 만드는 생각의 편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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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호 29면

인간의 본능은 장기생존을 추구한다. 이를 위해 본능은 무의식적으로 몸 속 에너지를 아끼기 위한 방향으로 작동한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뇌는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떠올리기 쉬운 기억·경험·이미지 따위의 불완전한 정보를 근거로 성급히 판단하려 한다. 다음은 우리나라 주요 사망원인들이다.

A. 교통사고
B. 폐렴

A와 B 중 어느 사망자 수가 더 많을까? 언뜻 생각하면 교통사고 사망자가 더 많을 것 같다. 하지만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사망원인 순위는 폐렴(6위)이 교통사고(9위)보다 높았다.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사건은 뉴스에서 자주 보도할 뿐만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자주 접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교통사고는 곧바로 떠올리기 쉬운 연상 이미지가 풍부하다. 반면 폐렴에 의한 사망사건은 국내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발병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뉴스에서 거의 다루지 않았다. 또한 교통사고에 비해 떠올릴 만한 연상 이미지도 매우 제한적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에게 좀더 익숙한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자가 폐렴 사망자보다 많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이처럼 우리의 뇌는 실제 확률이나 개연성을 따지기 보다 머릿속에서 곧바로 꺼내 쓸 수 있는, 이른바 ‘가용성(availability)’ 높은 정보에 의존하려 한다. 최근에 접한 정보일수록 가용성은 높아진다. 예를 들어 조류독감 뉴스를 보면 삼계탕 메뉴를 피하고, 구제역 소식을 접하면 삼겹살 소비를 줄이기 마련이다. 또한 특정 사건에 대한 언론의 집중보도는 다른 사건에 비해 그것을 현저히 두드러지게 함으로써 가용성을 높인다. 지난 6월, 메르스 확산에 대한 대대적인 언론보도 직후 마트와 식당 매출은 급감한 반면, 온라인 쇼핑과 배달음식은 급증하였다. 모든 언론이 집중하는 정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자주 더 많이 활용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행동반응 역시 즉각적이다.

가장 가용성 높은 정보는 바로 자기자신과 관련된 정보이다. 누구나 자신의 노력과 고충을 잘 알지만, 타인의 노력과 고충은 본인만큼 알기 어렵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공동성과에 대한 자신의 기여도를 다른 사람들보다 높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농구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양팀 선수들은 농구경기에 대한 자신의 기여도를 동료들보다 높게 평가했다. 빠르게 진행되는 경기 중에 동료들의 플레이를 자신의 플레이만큼 속속들이 파악하고 비교하기란 어렵다. 이 때문에 선수들이 경기 기여도 평가를 위해 가용할 수 있는 정보 자체가 자신의 플레이 위주로 제한되는 것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보다 자신의 기여도를 더 높게 평가하는 현상은 부부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확인됐다. 연구자는 실험에 참여한 남편과 아내에게 각각 본인들의 가사 기여도를 백분율로 환산토록 하였다. 실험결과 남편과 아내 모두 자신들에 대한 가사 기여도를 상대보다 높게 평가해 두 사람의 기여도 합계가 100%를 넘었다.

요약하면 익숙한 정보, 최신 정보, 현저한 정보, 본인 관련 정보는 가용성이 높아 우리의 뇌가 꺼내 쓰기 쉽다. 그러나 가용성 높은 정보에만 의존하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는 동떨어지기 쉽고 논리적 타당성도 낮아진다. 가용성에 의존할수록 객관적 추론이 어렵기 때문이다. 중요한 판단일수록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가용성 의존경향을 억누르고 외부의 객관적인 정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기용성에만 의존하면 생각은 편식한다.

최승호 도모브로더 이사 james@brode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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