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도피성 취업 땐 1년도 못 버텨 … 한참 ‘삽질’하면 기회 잡을 수 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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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TRA 상하이 무역관에서 중국 현지 취업에 성공한 30대 청년 4명이 좌담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심길섭·박종호·손현아·권도훈씨. [정원엽 기자]

계속되는 취업난에 정부는 해외로 눈을 돌리라고 한다. 해외 취업은 해외에서 외국인들과 일하며 사는 화려한 삶인 동시에 객지에서 겪어야 하는 고생과 서러움이 담겨 있다. 기회의 땅이라는 중국 상하이에서 해외 취업에 성공한 서밋 캐피털의 박종호(36), 일본재산보험 상하이지사의 권도훈(33), 중국 화장품 웨이나의 심길섭(30), 02021출판사의 손현아(30·여)씨가 해외 취업의 현실과 방향을 이야기했다. 이들은 현지 한인 모임인 케이아이씨(KIC·Korea In China) 모임 회원이다.

 심길섭(이하 심)=아버지 세대는 대학을 나오면 괜찮은 직장을 잡을 수 있었다. 지금은 고학력에 다양한 스펙을 갖춘 사람이 많다. ‘대학 졸업=직장인’이 아니고 ‘취준생(취업준비생)’이라는 중간 과정이 생겼다. 중국도 실업률이 높다. 한국에서 취업이 어렵다고 도피성으로 해외 취업을 생각하는 사람은 채 1년을 못 버티고 돌아가는 이들이 태반이다.

 권도훈(이하 권)=해외 취업이 구름 위에서 우아하게 있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거품이다. 많은 사람이 중국을 한 수 아래로 보고 우리가 선진국에서 왔다고 생각하는데 그럴 경우 해외 생활이 괴로워진다.

 손현아(이하 손)=해외 취업을 하겠다고 이력서를 내면서 “집은 나와요? 차는 나와요? 연봉은 국내보다 1.5배인가요”라고 질문하는 친구가 있다. 해외 취업을 과거 대기업 주재원과 동의어로 생각하는 거다. 주재원은 회사의 대표로 손꼽혀서 나온 이들이다. 해외 취업자는 현지인들과 동등하게 경쟁하는 것이지 주재원이 아니다.

 박종호(이하 박)=물론 환상도 있다. 하지만 중국 취업 시장을 보면 한국보다 훨씬 기회도 많다. 한국에서는 매년 15% 이상씩 연봉이 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은 역량만큼 돈을 받고 이직도 수월하다. 단순히 ‘해외 생활’이라는 타이틀과 명함을 가지는 게 아니라 미래를 생각할 때 비전이 있다.

 권=한국은 ‘대학 나오고 취업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서 교육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있다. 해외에 있는데도 “결혼 안 해? 너도 애를 낳아야지”라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학연수에 석사 졸업하면 30세 가까이 된다. 취업도 버거운데 해외 취업은 일반적 취업·결혼과는 다른 선택이 된다. 정부가 해외 취업을 말해도 통념을 거스르며 도전하기란 쉽지 않다.

 심=중국 정부도 자국 실업률을 줄이려 노력하며 외국인에게 취업 비자를 안 내준다. 제도적으로 4년제 대학 이상 졸업 후 2년간 경력 있는 전문인력만 취업 비자를 내준다. 취업시장도 국적에 따라 진입장벽이 있는 거다.

 박=‘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말이 있다. 문제는 구직자들이 자신도 모르고 취업시장도 모른다. 자신을 모르니 눈을 못 낮추고 취업시장을 모르니 체계적인 준비를 못한다. 자신을 모르니 100개 기업에 이력서를 뿌리는 거다. 해외 취업을 원한다면 해외를 알아야 한다.

 권=청년 취업은 수요와 공급의 문제다. 일자리는 한정돼 있는데 일하고 싶은 사람은 많다. 공무원을 준비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면 “그냥 다 그런 거잖아. 이래야 결혼도 할 수 있고 부모님도 그렇게 말하고….” 실패하지 않으려면 안정된 일자리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소개팅을 할 때도 회사명과 월급을 물어보는 시대가 아닌가.

 손=여자에겐 “혼기 놓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해외에서 취업하거나 공부하는 사람들은 80~90%가 나이를 꽤 먹어 결혼한다. 해외에서 솔로로 있다 한국 가서 바로 결혼하는 케이스도 꽤 봤다. 해외에 있으면 결혼 스트레스는 덜하지만 결혼 기회나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심=30세 내외의 여성들이 면접을 본다. 100% 결혼에 대해 물어본다. “결혼 안 할 건데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해외 취업 여성이 1~2년 안에 결혼 때문에 그만두는 사례가 많아 꺼린다. 남자 또한 결혼 등의 문제로 고민이 많다.

 권=정부 연수 프로그램이 중소기업 위주이고 스펙트럼이 좁다. 취업 준비생은 금융·마케팅 분야 취업을 원하는데 이런 프로그램은 찾기 힘들다. 해외 취업 정보를 한번에 보기 힘든 만큼 해외 취업 정보를 통합해야 한다. 어떤 분야는 고급 인력이 유출된다고 해외로 못 나가게 하는 경우도 있다.

 손=해외취업 정보 제공이나 연수프로그램을 보면 현실을 모른다. 현실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 돼야 한다. 정부가 하는 프로그램은 한국 사람들끼리 경쟁이다. 해외 취업은 한국 사람들끼리 경쟁하는 게 아니라 현지 사람과 경쟁하는 거다.

 심=50인 이상 100인 미만 중소기업의 인턴을 활용해야 한다. 드라마 ‘미생’이 유행했는데 거기 보면 신입은 복사할 줄 모르고 엑셀도 다룰 줄 모른다. 일하는 방식을 모르는 거다. 현장 경험이 있어야 현지에서도 믿고 채용한다.

박=취업 비자 받기도 너무 어렵다. 졸업증명서를 공증 받아오라고 하는데 방법이 없다. 중국에서는 한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공증을 받아오라고 하는데 한국 영사관은 안 된다고 했다. 결국 다시 한국에 들어가서 공증을 받아야 하더라. 제도적 답답함이 있다.

 손=해외 취업은 노다지다. 한참 삽질을 해야 하지만 금맥도 분명히 있다. 한국에서 취업 노력하는 만큼 하면 이곳도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발을 내딛는 자와 내딛지 않는 자가 느끼는 건 다르다.

 심=‘너 자신을 알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를 하기 때문에 목표가 높아진다. 정부도 해외 취업이라는 단어로 현혹해서는 안 된다. 국책사업이라며 성과에 치중할 게 아니라 현실을 알려줘야 한다. 홍보에 속아 나온 이들이 실망하고 돌아가서 실업자가 된다.

 박=해외 취업도 일종의 취업일 뿐이다. 로또가 아니다.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줘야 한다. 중국에서 3~4번째로 좋다는 푸단(復旦)대에서 석사를 해도 연봉 1600만원을 못 받는다. 그런데 외국인이니까 3000만원, 4000만원 받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곳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지원해야 한다.

 권=저희 네 사람이 말한 게 현실이다. 근데 한국에 있는 취업준비생은 절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환상에 기댄다. 해외 취업이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또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다.

[S BOX] 상하이 근무 한인 친목모임 … 대학생들에게 재능 기부도

케이아이씨(KIC·Korea In China) 모임은 2014년 1월에 처음 만들어졌다. 상하이에서 금융·경제·재보험·화장품·병원·컨설팅·물류 등 다양한 직종에서 근무하는 한국인들이 모여 산업·직무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시너지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지난해에는 한 달에 한 번 모여 2회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각종 분야에 정보를 공유했다. 올해는 인근 푸단대·재경대·상하이교통대·상하이외대에 유학 중인 한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멘토-멘티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재능 기부 형태를 추가해 운영하고 있다. 중국에서 유학을 하고 취업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현실을 알려주고 도움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재 멤버는 15명이다.

상하이=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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