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강남’ 창전엔 45층 아파트 섰지만 … 갈수기 전력난에 고급 일식집도 문 닫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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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다시 돌아간 평양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깨끗해진 포장도로, 어디서나 눈에 띄는 택시와 훨씬 많아진 고층빌딩은 새로운 도시의 풍경이었다. 세련된 옷을 입고 길가에 서서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든 채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행인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중국 일간지 환구시보(環球時報)의 평양 주재 특파원이 지난 3일 전한 풍경이다. 2007년 6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북한에서 근무했던 그는 중국으로 돌아갔다가 지난해 10월 다시 평양에 부임했다. 2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크게 달라진 평양의 모습을 환구시보는 ‘매혹적 변화의 기미. 북한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경험하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특집기사에서 상세히 전했다. 그는 특히 평양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규모 건설에 주목했다. 교직원 기숙사, 과학자 위성도시, 승마장 등 새로운 건물들이 빠른 속도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옌볜(延邊)대 진창이(金<5F37>一·국제정치연구소장) 교수는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뒤 기업이 근로자들에게 이익을 배당할 수 있도록 허용해 노동자들의 의욕 고취와 이윤 창출을 꾀했다”며 “평양 일부 지역에서는 부동산 거래도 허가해 개인의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 수 있게 여건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이미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 정도에 가까워졌다. 6~7%대의 고성장률을 유지하는 게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환구시보는 ‘평양의 강남’이라고 불리는 창전거리에 대해서도 “단오절(음력 5월 5일) 무렵 찾은 창전거리의 음식점은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한 중국인 친구는 ‘이곳만 보면 중국 대도시의 밤거리 풍경과 전혀 다를 게 없다’고 놀라워했다”고 썼다. 김정일·김일성 동상이 있는 만수대 언덕 주변에 조성된 창전거리는 북한판 뉴타운이다. 2012년 완공됐으며 45층짜리 고층아파트 등이 늘어서 있다.

 북한 주재 외교사절의 평가도 다르지 않다. 올 2월까지 5년 동안 북한 주재 중국대사를 지낸 류훙차이(劉洪才)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부장은 최근 “북한 당국이 농업과 다른 주요 분야에서 개인에게 성과급을 주는 정책을 실시한 뒤 주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명(明)’만큼 ‘암(暗)’도 명확하다. 최근 방북했던 한 인사는 “갈수기에 전력 생산량이 줄면서 냉장고를 돌리지 못해 문을 닫은 고급 일식집도 있고 아파트는 지었는데 정부에서 해야 하는 상하수도 설비가 안 돼 입주를 못하는 곳도 있다”며 “건설업 붐이 일다 보니 비리와 부패도 속출하고 있는데 지난해 평양 아파트 붕괴사고도 노무자들이 시멘트를 빼돌려 부실 공사를 한 게 원인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지난해 발생한 곱등어(돌고래) 집단 폐사도 전력난과 무관치 않다. 김정은은 강성대국 상징이라며 대동강변에 능라도유원지 곱등어관을 만들었다. 서해 남포에서 평양까지 50㎞ 길이의 주철관을 묻어 서해 바닷물을 대왔다. 하지만 전력 부족으로 해수 공급이 끊기고 정화시설이 가동되지 않으면서 곱등어들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특별취재팀=최익재 팀장, 정용수·전수진·유지혜·안효성 기자,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왕웨이 인턴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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