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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연명할 돈 계속 주면 안 돼 … 어려워야 개혁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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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독일은 왜 그리스에 강경할까. 그 이유가 한스 베르너 진(왼쪽) ifo경제연구소장과 사공일 본사 고문의 대담에서 드러났다. 진 소장은 “(구제금융 추가 지급보다) 그렉시트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두 석학의 대담은 독일 뮌헨 ifo경제연구소에서 진행됐다. [프리랜서 장은경]

13일(현지시간) 유로존 정상회의에서 3차 그리스 구제금융안을 협상하기로 합의하면서 그리스의 국가부도와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는 일단 줄었다. 하지만 이번 합의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넘어야 할 산이 아직도 많다.

 사공일 본사 고문 겸 세계경제연구원(IGE) 이사장이 지난 10일 한스 베르너 진 독일 ifo경제연구소장을 독일 뮌헨에서 만나 그리스 사태와 유로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대담을 했다. 진 소장은 그리스에 대한 강경론을 주도하는 이코노미스트다. 두 석학이 ifo경제연구소 본사에서 대담을 나눈 당시는 그리스 사태가 잠정 타결되기 전이었다. 사공 본사 고문 겸 IGE 이사장은 경제정책 담당자로 실물을 다룬 경험이 많다.

 ▶사공=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새로운 재정긴축안과 경제개혁안을 제출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과 재무장관들이 격론을 벌였다. 그리스의 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진=긴축을 더하고 정부 지출을 더 줄여야 하는데 세수만을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이전에도 세수 확대를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제안에 대해 아주 비관적이다.

 ▶사공=그리스의 안이 단기적 경기 회복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긴축(austerity)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실망스럽다. 성장에 도움이 될 구조조정에 관한 약속과 논의가 없다. 치프라스가 경제 부흥에 대한 진정성과 신념을 갖고 있다면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중장기 구조조정 방안을 들고 나왔어야 시장과 채권자들을 안심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신뢰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진=그리스가 유로화를 채택하면서 이자율이 25%에서 5%로 떨어지자 돈을 많이 빌려서 총수요를 늘렸다. 임금과 물가가 올랐고 경쟁력을 잃었다. 이제는 물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긴축이 필요하다. 달리 말해 반(反)케인스적 정책을 펴야 한다. 그런데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아 있으면서 디플레 정책을 펴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스는 자국 화폐를 발행해야 하고 통화가치를 떨어뜨려야 한다.

 ▶사공=긴 안목에서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리스는 부채 조정(만기 연장, 채무의 일부 탕감 등)과 함께 총수요를 일정 수준에서 유지하는 정책도 필요한 것 아닌가.

 ▶진=그리스 경제는 지금보다 더욱 위축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입은 계속 늘어난다.

 ▶사공=경쟁력이란 상대적이다. 유로존 다른 회원국, 특히 독일이 그리스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함께 노력한다면 그리스의 부담도 좀 줄어들 수 있다.

 ▶진=그렇게 하기 위해선 독일이 인플레 정책을 써야 한다. 그리스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독일의 인플레이션이 50%는 돼야 한다. 불가능하다(독일이 경기 부양으로 임금 등 물가 수준을 높이면 그리스와 견줘 수출 가격경쟁력이 하락한다. 독일의 경쟁력이 하락하면 그리스 같은 남유럽 국가의 수출이 늘어날 여지가 생긴다).

 ▶사공=독일 혼자서 한꺼번에 그렇게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진=이론적으로 봐서 10년에 걸쳐 물가를 올린다 해도 매년 독일이 4% 정도, 스페인·포르투갈·이탈리아는 0%, 프랑스는 1%, 네덜란드 등 기타 회원국은 2% 정도 물가 상승을 유발해야 가능하다. 유로존 전체적으론 물가가 평균 2% 정도 올라야 한다.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내가 그렉시트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보는 이유다.

 ▶사공=다시 말하지만 장기적으로 당신의 말이 해결책이라고 본다. 그러나 양쪽의 정치적 현실을 고려할 때 그 가능성이 작다. 그리스가 유로존에 머물면서 일부 긴축정책과 함께 잘 짜인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게 필요하다. 부분적으로 기존 부채 조정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진=그리스 국민은 유로존 안에 머물면서 다른 유로존 국가로부터 돈을 쉽게 빌리기를 원한다. 지난 5년간 그리스는 매년 500억 유로 이상을 지원받았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25%가 다른 유로존 국가의 공공 부문에서 나온 것이다.

 ▶사공=당신은 유럽을 미합중국과 같은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곤 했다. 유럽의 각 나라가 미국의 각 주처럼 재정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유로 탄생 등 모든 유럽 통합 프로젝트가 경제적 논리보다 오히려 정치적 동기에서 추진된 것 아닌가. 그리스도 유로존에 들어갔고. 정치적 고려로 (통화동맹에 따른) 경제적 비용과 경제적 비효율성을 무시한 게 문제였다.

 ▶진=그렇다. 유로 도입으로 정치적 평화를 원했는데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유럽인들 사이에 지금과 같은 의견 분열은 전후 처음이다.

 ▶사공=그리스가 유로존 안에서 상당한 압박을 받았는데도 행정 개혁과 경제 구조조정을 하지 못했다. 유로존 탈퇴 이후 개혁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진=그리스에 외부에서 연명할 수 있는 돈을 계속 제공해 준다면 그리스가 개혁을 한다는 보장이 없다. 특히 임금 삭감 같은 어려운 일을 하기 힘들다. 스스로 어려울 때 개혁이 가능하다. 아일랜드가 좋은 예다.

 ▶사공=이제 독일의 역할과 리더십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리스 사태 이후 많은 학자나 논객들은 ‘독일이 유로존과 세계 경제 전체를 위해 충분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현재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 폭은 GDP 대비 8~10%에 달하는 반면 독일 내의 투자와 생산성 향상은 저조하다. 많은 경제학자는 독일이 국내 수요 진작을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유로존 경제와 세계 경제에 도움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독일이 다른 나라의 구제금융에 돈을 다 쓰는 바람에 국내 투자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독일에서 호황을 보이는 분야는 건설업에 국한돼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남유럽 국가에 대한 투자를 꺼리고 있다. 이런 자금이 독일의 부동산으로만 쏠리고 있다.

 ▶사공=금융 측면에서만 볼 게 아니다. 독일 경상수지의 지나친 흑자는 사회적 협약, 즉 정부와 노동계와 업계의 합의에 따른 임금 인상 자제와 독일의 경쟁력 향상에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독일이 근로자들의 임금을 높여 소비를 진작한다면 장기적으로는 민간 투자도 활성화될 것 아닌가. 독일이 사회간접자본 등 공공 투자를 늘리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면 민간 투자도 유발될 것이다. 이는 독일 경제뿐 아니라 유로존과 세계 경제 전체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독일이 대규모 공공 투자를 늘리고, 이에 소요되는 자재와 인력 등을 남유럽 국가에서 충당하면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분이 남유럽으로 흘러 들어가 유로존의 불균형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진=그렇긴 하지만 (재정을 통한 유효수요를 확대하는) 케인스식 접근은 어렵다고 본다. 독일은 15년 이내 베이비부머가 은퇴한다. 연금 수요가 급증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 돈을 빌려 재정 지출을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법적으로 어렵다.

 ▶사공=나는 케인스 방식의 경제 처방만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한국 경제를 위해 공급 측면의 구조조정을 통한 성장잠재력 향상을 누구보다 중시한다. 실제 독일은 2003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부의 ‘어젠다 2010’을 통한 노동시장 개혁 등 공급 측면의 구조조정을 강조해 왔다. 당신도 이런 계획에 대해 조언을 해 주지 않았는가. 그러나 경제정책은 정치와 사회적 현실 속에서 펼쳐진다. 따라서 단기적 어려움을 어느 정도 해결하지 않으면 정치적으로 어려운 근본적 개혁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케인스 방식의 단기 수요 관리도 필요하다.

 ▶진=동의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사공=독일이 유로화 도입의 최대 수혜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당신은 독일이 유로의 최대 수혜자가 아니라 오히려 희생한 측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진=1995년 독일의 1인당 GDP는 유럽에서 둘째였다. 그런데 지금 유로존에서 일곱째다. 독일은 유로화 도입 이후 국내 투자와 생산성이 부진해졌다.

 ▶사공=독일의 1인당 국민소득 순위가 낮아진 것은 2003년 이전의 사회적 불안요인 때문이었다. 그때 독일은 ‘유럽의 병자’로 불리지 않았나. 그러나 독일은 2003년부터 구조조정을 단행해 경쟁력이 회복됐다. 슈뢰더가 2003년 천명한 ‘어젠다 2010’에 따른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독일의 사회적 협약으로 임금 인상이 자제되면서 수출 가격경쟁력이 크게 높아졌다. 결과적으로 독일이 유로화의 최대 수혜자가 된 점은 사실이다. 독일이 경제적 리더십을 보여야 하는 이유다.

 ▶진=고민해 볼 문제다.

정리=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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