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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독립영화 게릴라, 충무로 습격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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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통통 튀는 아이디어를 지닌 독립영화 창작집단이 침체된 충무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김태곤(35)·전고운(30)·우문기(32)·이요섭(33)·권오광(32) 감독과 김지훈(36)·김보희(32) PD로 구성된 ‘광화문 시네마’다. ‘1999, 면회’(2013, 김태곤 감독)와 ‘족구왕’(2014, 우문기 감독), 이 두 편의 작품을 흥행시킨 이들은 요즘 세 번째 작품 ‘범죄의 여왕’(이요섭 감독)을 찍고 있다. ‘범죄의 여왕’ 제작비는 4억원으로, 1000만원을 들여 만든 데뷔작 ‘1999, 면회’ 때의 40배로 뛰었다. 이들은 상업영화의 연출까지 맡으며, 독립영화 밖으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1999, 면회’ ‘족구왕’ ‘범죄의 여왕’(왼쪽부터) 등 광화문 시네마의 영화는 청춘의 현실과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진 라희찬(STUDIO 706)]

 ◆월세보증금과 품앗이로 시작=이들은 김지훈 PD(중앙대 독문과 전공)를 제외하고,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대학원) 13기 동기다. 2012년 김태곤 감독이 각본·연출을 맡은 ‘1999, 면회’의 촬영을 전고운·우문기 감독이 도와주면서 광화문 시네마의 싹이 텄다. 전고운 감독과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김태곤 감독은 “광화문 근처에서 주로 작업했기에 영화사 이름을 광화문 시네마로 지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월세 보증금 1000만원의 작업실(서울 계동)에서 협업하며 영화를 만든다. 한 명씩 돌아가며 연출을 맡고, 나머지가 프로듀싱·각색·촬영 스태프 섭외 등을 돕는 품앗이 방식이다. 전고운 감독은 “프리 프로덕션 단계의 힘들고 고독한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이들은 데뷔작부터 주목받았다. 군대에 있는 친구를 면회 간 두 젊은이의 이야기를 다룬 ‘1999, 면회’는 부산국제영화제 남자배우상, 그리스 데살로니키 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희망없는 청춘의 발랄한 스포츠 성장담이란 호평을 받은 ‘족구왕’은 지난해 4만5000명의 관객을 모으며, 독립영화계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새롭게 도전하고 있는 ‘범죄의 여왕’은 고시원에 사는 수험생이 120만원의 수도요금을 해결해 달라고 엄마에게 부탁하면서 시작하는 코믹스릴러다. 연출을 맡은 이요섭 감독은 “아내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가제)에 큰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화문 시네마의 네 번째 작품이 될 ‘소공녀’는 생활에 쪼들린 30대 중반의 여성 가사도우미가 집을 버리고 떠돌아다니는 스토리다. 김보희 PD는 “의도하진 않았지만, 고된 현실에서 고군분투하는 청춘의 모습을 작품에 잇따라 담게 됐다”고 말했다.

 ◆잘나가는 영화사? 우린 영화 공동체=영화 말미에 차기작을 예고하는 쿠키 영상을 넣는 것도 광화문 시네마의 특징이다. 김태곤 감독은 “쿠키 영상은 이런 차기작을 만들겠다는 관객과의 약속인데, 유튜브 등에서 화제가 되면서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기도 한다”고 했다. ‘광화문 시네마에는 뭔가 새로운 게 있다’는 인식이 충무로에 퍼지면서, 일부 감독은 상업영화의 부름을 받기도 했다. 김태곤 감독은 김혜수 주연의 ‘가족계획’(내년 초 개봉), 권오광 감독은 박보영·이광수 주연의 ‘돌연변이’(하반기 개봉)의 메가폰을 잡았다. ‘돌연변이’의 투자 배급을 맡은 CJ E&M의 관계자는 “2013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단편)을 받은 ‘세이프’(문병곤 감독)의 각본을 썼던 권오광 감독의 꼼꼼한 연출력이 돋보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들의 상업영화에는 광화문 시네마와의 접점이 숨은 그림처럼 등장한다. ‘범죄의 여왕’에 누군가 스포츠 신문을 보는 장면이 있는데, 신문 1면에 ‘가족계획’의 주인공 여배우(김혜수)의 스캔들 기사가 크게 실리는 식이다. 이들은 외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재미있고, 잘난 척하지 않는 영화’를 꾸준히 만들겠다고 했다. “우린 영화공동체이자 가족이에요. 돈이나 명성이 아닌, 영화 만드는 재미를 위해 모였기 때문에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겁니다.”(우문기)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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