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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박 대통령, 당·청 관계 복원에 팔 걷어붙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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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4일로 취임 1년을 맞았다. 김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후진 정치를 바꾸고, 어려운 경제를 살리고, 선거에서 승리하는 ‘3고’를 당의 목표로 제시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여당이 지금 같은 비정상적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면 김 대표의 다짐이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김 대표는 지난해 7월 당 대표에 취임하면서 수평적 당·청 관계를 약속했지만 공수표가 되고 말았다. 그가 지휘해온 새누리당이 박 대통령의 제왕적 통치구조를 견제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의원들이 뽑은 원내대표가 청와대와 엇박자를 냈다고 쫓겨났다. 단순한 여당의 내홍을 넘어 나라의 민주주의가 훼손된 중대 사태다.

 여기엔 박 대통령의 일방적 국정운영 탓이 크지만 김 대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책임도 있다. 그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한밤중에 가져온 국회법 개정안을 덜컥 통과시켜줬다가 대통령이 반대하자 돌아섰다. 유 전 원내대표의 사퇴도 마찬가지다. 열흘 넘게 갈피를 못 잡고 오락가락하다 대통령에게 직언 한마디 못하고 청와대 뜻을 그대로 따르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당정협의가 올스톱되면서 국정이 사실상 마비됐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갔다.

 김 대표는 남은 1년간 건강한 당·청 관계 복원을 위해 온몸을 던져야 한다. 대통령의 정책에 최대한 협조하되 시정을 요구할 건 요구해야 한다. 자신과 여당이 청와대의 호위부대가 아니라 민생과 국익을 책임진 집권세력의 추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 대통령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청와대가 여당이나 국회를 좌지우지했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당·청 간에도 최소한의 견제와 균형은 작동해야 한다. 청와대가 그 경계를 흔들면 당·청 관계를 얼마 동안 수직으로 끌고 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의미 있는 국정 성과를 내긴 어렵다. 대통령을 향한 의원들의 반감과 불신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 오늘 새 원내대표가 결정되는 대로 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대화 채널을 복원해야 한다. 새로 임명한 현기환 정무수석에게 권한을 줘 청와대와 당을 잇는 다리 역할을 제대로 하게끔 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건 박 대통령이 남은 2년반 임기 동안 어떤 과제에 집중할 것인지, 어떤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억돼야 할지 깊이 성찰하고 이를 김 대표와 공유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국정의 비전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당·청 관계 복원을 외쳐봤자 공염불에 그칠 뿐이다.

박 대통령은 다음달 임기 반환점을 맞는다. 박 대통령은 집권 3년차인 올해를 4대 부문 개혁 등 핵심 어젠다를 추진할 적기로 삼았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진 게 없다. 지금은 박 대통령이 소신껏 국정을 펼칠 마지막 기회다. 그러려면 원활한 당·청 관계 복원이 필수이며 박 대통령과 김 대표가 당장 만나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