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스낵컬처' 바람

중앙일보

입력

빠른 사회 변화에 적응하려면 정보를 더 빨리 더 많이 접해야 한다. 한 직장인이 차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정류장에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찾고 있다.

오전 7시 회사로 향하는 증권맨 정기창(40)씨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스마트폰으로 개그 웹툰(인터넷 만화)을 보며 잠을 쫓았다. 버스에 오른 뒤 뉴스 큐레이션 애플리케이션(앱)을 켰다. 설정해 놓은 분야와 키워드에 따라 선별된 해외 뉴스를 한눈에 훑었다. 점심시간엔 식사 뒤 공원에서 웹드라마(모바일 드라마)를 감상했다. 퇴근길엔 판타지 웹소설(온라인 소설)에 빠져들었다. 이날 하루 정씨의 자투리 시간을 메워준 건 스낵컬처다.

스낵컬처는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 빠르고 가볍게 즐기는 모바일 문화다. 짧은 시간 안에 필요한 정보만 취하려는 사용자의 기호에 맞춰 구성된 미디어 콘텐트다. 보다 빨리, 이해하기 쉽게, 빠르고 짧게, 내가 원하는, 게임처럼 재미있는 특성을 지향한다.

쉽다, 빠르다, 짧다, 재밌다
닐슨코리아클릭이 조사한 하루 중 모바일 콘텐트 유형별 이용시간을 보면 동영상은 2013년보다 무려 87% 증가했다. 소셜미디어(60%)·포털사이트(54%)·게임(44%)·커뮤니케이션(8%)보다 많다. 웹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모바일북의 성장도 가파르다. 시장 규모가 2006년 208억원에서 2013년 2024억원으로 9배 이상 성장했다.
 이 같은 스낵컬처의 인기는 대중의 호기심을 끄는 주제를 골라 필요한 내용만 전달하는 속성에서 비롯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부담을 줄이고 알고 싶은 것만 보려는 바쁜 현대인의 성향에 맞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유행에 따라 순간에 주목을 끌 목적으로 만들어진 내용도 적지 않다. 김영주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센터장은 “이 때문에 압축하기·잘라보기·훑기처럼 정보를 짤막하게 즐기려는 행태가 확산됐다”며 “모바일 기술의 발달이 촉매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스낵컬처의 대표 콘텐트로 웹툰·웹드라마·웹소설·팟캐스트 등이 꼽힌다. 디지털 네이티브의 등장도 스낵컬처가 인기를 끄는 한 원인이다. 디지털 네이티브는 디지털 환경에서 나고 자란 10~20대를 지칭한다. 이들은 인터넷 세상에서 빠르고 간결하게 재미를 추구하는 활동에 초점을 둔다. 개인용 컴퓨터(PC)에 익숙한 인터넷 세대인 30~40대와 달리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시스템을 기반으로 활동한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모바일 콘텐트 플랫폼을 운영하는 피키캐스트 장윤석 대표는 “페이스북 브랜드 페이지를 관리하는 고교생 운영자를 만나 보니 스마트폰으로만 30만~40만 명의 회원을 관리하더라”며 “TV·PC에 익숙한 기성세대와 달리 10~20대는 스마트폰을 핵심 미디어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지식 나눔의 장으로 진화
생활정보 등을 주로 다뤄 가벼운 문화로 저평가받던 스낵컬처는 최근엔 품격 있는 지식을 추구하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 인기 팟 캐스트 ‘지대넓얕(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은 잡학다식한 진행자들이 모여 인문·사회·정치·역사 지식을 나눈다. 어려운 인문학을 입문서처럼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도록 구성해 인기다.
 출판업계도 팟캐스트에 앞다퉈 진출해 지식 욕구를 채워주고 있다. 유명인이나 전문가가 책 비평이라는 형식을 통해 책 내용에 다양한 시사·정보·인터뷰를 곁들여 지식의 재미를 선사한다.
 창작의 대중화도 스낵컬처 인기에 한몫한다. 정보통신 기술 발달로 일반인들도 문화 생산자가 될 수 있다. 네이버의 라인, 트위터의 바인,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 등을 이용하면 10초 안팎의 동영상, 음악 콘텐트를 바로 만들어 공유할 수 있다.
 권병웅 중앙대 예술경영학과 교수(『하이퍼컬처와 문화콘텐츠』 저자)는 “스낵컬처는 속도·이미지·소리에 몰두하는 감각적인 문화여서 지식의 깊이가 얇고 본질을 흐리게 하거나 주의력결핍·중독을 부추기는 부작용도 있다”며 “하지만 관련 지식을 더 깊이 배우도록 유도하는 역할도 있어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낵컬처(Snack Culture)=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기기로 시간·장소에 제약 없이 짧은 시간 동안 쉽고 간단한 정보나 오락물을 즐기는 문화현상. 2007년 미국 잡지 와이어드(Wired)에서 '햄버거처럼 쉽고 빠르며 가벼운 식사에 빗대어 소규모 문화 콘텐트를 일컫는 말'로 처음 소개됐다. 스낵컬처 현상은 미디어 콘텐트를 비롯해 의류·식음료·출판·방송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대한민국 콘텐츠 산업, 2015년을 전망하다’라는 보고서에서 스낵컬처를 차세대 한류 붐을 이끌 문화 콘텐트로 꼽았다.

<글=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사진="서보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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