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으로 가져오자' 폐기장 유치경쟁 후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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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뜨거운 감자였던 방사성폐기물처리장(폐기장)유치 문제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지정했던 후보지 주변의 지자체와 주민들이 "우리 고장에 폐기장을 설치해 달라"며 잇따라 청원을 하고 나서면서 유치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유치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광역자치단체가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 주목을 받고 있다.

"유치"선언 잇따라=부안군 위도주민들은 5일 전북도를 방문, 폐기장 유치 성명서를 발표하고 광역자치단체의 지원을 요구했다.

주민들은 "폐기장 유치는 국가 숙원사업의 해결은 물론 우리 고장을 세계적 관광지로 살리나갈 수 있다"며 전체 주민의 90%를 넘는 9백37명의 찬성 동의서를 전달했다. 이들은 오는 9일 유치청원서를 부안군의회에 제출하고 빠른 시일내 중앙부처도 방문할 계획이다.

이에앞서 고창군 해리면 주민들도 지난달 말 기자회견을 갖고 "영광원전서 5km 떨어진 곳에 수년째 살고 있지만 지금까지 안전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폐기장 유치를 요구했다.

또 4백여명의 군산시 옥도면 비안도 주민들도 최근 유치를 희망하는 신청서를 시의회에 제출했다.

한편 전남 영광군 유치위원회도 "전남도가 폐기장 유치 운동에 적극 나서라"는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전남 장흥군 주민과 의회는 부지 타당성을 조사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특히 광역단체로는 처음으로 전북도가 지난 2일 자문교수.공무원들로 구성된 지원단을 설치하고 폐기장 유치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어 움직임이 주목된다.

"반대"목소리도 여전=유치 목소리가 이처럼 높아가는 가운데 호남지역 사회.환경.노동.농민단체 등은 '핵발전 정책전환 및 핵폐기장 반대 서남해안 대책위'를 구성, 대정부 투쟁 강도를 높여 나갈 방침이다.

대책위측은 ▶핵폐기장 안전성 ▶핵발전 정책 방향 ▶후보지 검토 보고서에 대한 객관성 등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해 핵폐기장 반대 여론을 확산시켜나갈 계획이다.

대책위 관계자는 "핵폐기장 안전성 등에 대해 사회적 검증 절차없이 산업자원부가 지역별 순회설명회 등을 통해 주민들을 현혹시키고 있다"며 "주민홍보와 함께 단계적으로 대정부 투쟁 수위를 높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전북 고창군 핵추방 범군민 대책위는 관내 해리면 주민의 유치의견과 달리 농번기가 끝나는 이달 중순부터 강력한 범군민 반대운동에 다시 나설 방침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대칙위 김종건씨는 "조직을 확대 개편해 폐기물 매립장 관련 정부 관계자 및 한국수력원자력㈜의 지역 방문을 저지하고 면단위로 반대 궐기운동을 확산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폐기장은 정부가 지난 2월 전북 고창, 전남 영광, 경북 울진.영덕 등을 후보지로 선정해 발표했지만 시민단체 등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결정을 못한 채 표류해 왔다.

정부지원 규모 및 향후 일정=최근 잇따른 폐기장 유치운동은 주민들의 방사성에 대한 이해와 안전성에 대한 인식이 점차 높아진데다 유치에 따른 실익이 크다는 판단을 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 산자부는 관련 지자체의 단체장들이 참여한 가운데 폐기장 유치 지역에 대한 지원규모를 밝혔다. 이에 따르면 폐기장 핵심사업과 지원사업, 지역개발 사업의 총 규모는 2조여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연간 1조원대의 부가가치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차세대형 프로젝트인 양성자 가속기도 함께 줄 방침이다. 또 한국수력원자력㈜와 원자력 환경기술원 등 부속기관의 이전 추진도 약속하고 있다.

특히 3천억원의 지원금을 지자체가 주민들과 협의해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는 7월15일까지 유치 신청을 받은 뒤 주민들의 뜻과 현장 지질 조사 등을 거쳐 올 연말쯤 최종 후보지를 선정할 방침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매립장을 유치할 경우 실보다 득이 많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일부 지자체서 경쟁적으로 유치에 나서고 있다"며 "서로가 받기를 꺼리는 대표적 '님비(NIMBY)'대상의 하나인 폐기장이 오히려 서로 가져가려고 노력하는 '핌피(PIMFY)'로 변모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장대석.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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