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소년 돕는 이운재 선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지 못해 면목이 없습니다. 그렇게 못한 것도 아니었는데 워낙 경기가 풀리지를 않더군요. 앞으로 사흘간 열심히 준비해서 아르헨티나와의 평가전(11일 오후 7시.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는 반드시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

8일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에서 0-2로 패한 한국 축구대표팀의 골키퍼 이운재(30.수원 삼성 블루윙스 소속) 선수가 남은 아르헨티나전에 임하는 각오는 남다르다. 자신의 플레이를 보러 수만리를 날아오는 아프리카의 한 소년 때문이다.

지난해 월드컵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선 스페인 선수의 승부차기를 막아내 일약 영웅으로 떠오른 이운재 선수는 현재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아프리카 카메룬의 열두살짜리 소년 브레스코 체 참에게 한국인을 대표해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李선수와 부인 김현주(30)씨가 장래 축구선수가 되는 게 꿈이라는 초등학교 4학년생 브레스코를 후원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부터다.

당시 李선수는 개발도상국의 불우한 어린이들을 돕는 활동을 펴는 비정부기구(NGO)플랜 코리아(www.plankorea.or.kr)를 통해 카메룬의 수도 아운데에서도 자동차로 10시간을 더 가야하는 시골 마을 코벤양이라는 곳에 살고 있는 이 소년을 소개받았다.

브레스코가 교육과 의료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끼니도 겨우 해결할 정도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李선수는 마음이 너무나도 아파 곧바로 교육비와 의료비를 계속 보내주기로 플랜 코리아 측과 약속했다.

"축구선수가 되는 게 꿈이라고 장래 희망을 적은 아이의 소개서가 왠지 눈길을 붙잡더라고요. 저도 어릴 적에 어렵게 운동을 했기 때문에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아이에게 애착이 갔습니다. 아이가 꿈을 이룰 때까지 꾸준히 도울겁니다. "

李선수는 매달 내는 후원금 외에도 브레스코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 제대로 된 축구공조차 없다는 플랜 코리아 관계자의 말을 듣고 축구공 두 개에 자신의 사인을 적어 보냈다. 부인과 함께 편지를 써 지난해 월드컵 때 찍은 사진과 함께 보냈다.

'지난해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사상 처음으로 4강에 진출했을 때 말할 수 없이 기뻤단다. 브레스코도 꼭 카메룬의 대표선수가 되길 바란다. '(한국 수원에서 이운재와 김현주)

한달 뒤 받은 브레스코의 답장에는 '후원자님이 유명한 축구 선수라는 것이 자랑스러워요. 후원자님과 함께 축구를 할 기회가 있으면 제가 후원자님이 지키는 골대로 한골이라도 넣을 수 있길 바라요. '라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학급에서 일등을 했다는 소식과, 앞을 못보는 아버지와 농사로 가정을 꾸리는 어머니 등 자세한 가족사항, 하루 한끼 식사가 고작이며 그나마 옥수수나 코코아 수프가 대부분이라는 이야기, 李선수가 보내준 축구공으로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았다는 얘기도 적혀 있었다.

李선수는 최근 브레스코를 열흘 예정으로 한국에 초청했다. 브레스코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11일 아르헨티나와의 평가전과 14일 수원에서 열리는 K리그 경기를 관전한다.

또 15일 오후 2시부터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북측 광장에서 플랜 코리아가 주최하는 '지구촌 어린이에게 꿈을'행사에서 李선수가 여는 팬 사인회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맨발로 축구를 한다는 브레스코에게 발에 꼭 맞는 축구화도 마련해 주고 함께 축구도 할 계획"이라는 李선수는 "비록 많은 돈을 보내주는 것은 아니지만 브래스코의 꿈을 키워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뿌듯하다"며 "브래스코가 카메룬의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것을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플랜 코리아는 이번 행사를 통해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을 돕는 데 동참할 후원자 2002명을 모집할 계획이다. 현재 3천5백여명의 한국인 후원자들이 플랜 코리아를 통해 아시아.아프리카 등 전 세계 개발도상국 어린이 4천여명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플랜 인터내셔널 본부가 후원국 지부를 두고 있는 15개 나라 가운데 한국이 후원자 수에서 꼴찌라고 합니다. 우리가 지난해 축구로 세계 4강에 오른 것처럼 우리보다 어려운 나라의 어린이들을 돕는 데도 최소한 세계 4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운재 선수 부부의 소망이다. 문의, 02-3444-2216.

박현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