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투기자본 공격 막아야 vs 이사회 독립성 떨어져 남용 우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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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호 18면

엘리엇을 비롯한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와 관련해 ‘경영권 방어장치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경영권 방어수단 필요한가

재계는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적이 칼을 휘두르니 막을 방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경제개혁연대ㆍ참여연대 등은 본래 목적과 달리 경영권을 악용할 수 있어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내 30대 기업 사장단은 9일 공동성명을 내고 “반 기업 정서를 등에 업은 해외자본의 공격에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우리나라는 외국 투기자본의 천국”이라며 “균형 잡힌 지배구조와 경영권 방어수단 마련을 위해 필요하다면 다른 경제 단체와 뜻을 모아볼 것”이라고 밝혔다. 재계는 2003년 SK와 소버린 간 경영권 분쟁 후 해외 투기자본에 맞설 수 있는 경영권 보호장치 도입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있을 때 기존 주주가 시가보다 싸게 신주를 살 수 있는 포이즌 필(신주예약권), 대주주를 비롯한 일부 주주에게 일반 주주보다 의결권을 많이 주는 차등의결권주, 특정 사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특별주식인 황금주 제도 등이다. 구글은 2004년 상장 당시 1주당 1개의 의결권이 있는 클래스A 주식과 1주당 10개의 의결권이 인정되는 클래스B 주식을 발행했다. 클래스 B주식은 대부분 경영진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한성대 교수)은 “경영 잘못으로 회사가 어려워지면 경영진이 물러나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일 정도로 경영권이 과보호돼 있다. 이사회 독립성도 미국ㆍ유럽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며 “이런 현실에서 경영권 방어장치를 도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만일 한국이 경영권 방어장치를 도입하면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의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은 “악의적인 인수합병은 막아야지만, 그에 앞서 투명경영, 이사회 독립이 먼저 필요하다”고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이 3일 발의한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도 의견이 갈린다. 현행 외국인투자촉진법은 외국인 투자제한 사유를 ▶국가의 안전과 공공질서 유지에 지장을 주는 경우 ▶국민의 보건위생 또는 환경보전에 해를 끼치거나 미풍양속에 현저히 어긋나는 경우 등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여기에 박 의원은 ‘우리나라 경제의 원활한 운영을 현저히 저해하는 경우’를 추가하고 외국인투자위원회가 외국인투자 제한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심사하도록 했다. 재계는 반긴다. 적대적 공격에 대한 방어수단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개혁연대는 7일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했다.

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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