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 부는 류승룡 … 약속 깨면 무서운 일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류승룡은 우룡의 피리 연주를 직접 소화했다. 피리 연주자 권병호에게 배웠다. 그는 현장에서 지긋지긋할 정도로 피리를 불고 또 불었다. [사진 CJ E&M]

지키지 않은 약속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9일 개봉하는 판타지 호러 영화 ‘손님’(김광태 감독)이 던지는 질문이다. 독일 민간 전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모티브 삼은 시나리오는 1950년대 한국으로 무대를 바꿨다. 떠돌이 악사 우룡(류승룡)과 그의 아들 영남(구승현)이 지도에도 없는 한 마을에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피리 부는 재주를 가진 우룡은 목돈을 주겠다는 촌장(이성민)의 말에 마을의 골칫덩이인 쥐떼를 쫓아내지만, 촌장은 약속을 어긴다.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야기 그리고 우룡과 촌장의 팽팽한 대결이 눈길을 끈다. 류승룡(45·사진)이 ‘명량’(2014, 김한민 감독) 이후 꼭 1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그는 ‘손님’을 가리켜 “보물찾기 같은 영화”라고 말했다. 그만큼 관객이 즐겁게 의미를 파헤칠 만한 비유와 상징이 많은 영화라는 설명이다.

 -이 영화에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초반 설정은 익숙한 듯하지만, 그 뒤에 펼쳐지는 색다르고 놀라운 이야기가 맘에 들었다. 시나리오를 읽고 감독에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 싶었나’고 물었는데, ‘약속에 관한 얘기’라고 하더라. 이 답을 듣자마자 출연하겠다고 했다.”

 -우룡은 어떤 인물이라고 봤나.

 “우룡은 본래 낙천적인 인물인데 그 마을에 들르며 생각지도 못한 사건을 겪고 점차 달라진다. 자신도 그렇게 달라질 줄 몰랐을 것이다. 큰일이 닥치기 전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우룡의 변화가 그것을 보여준다.”

 류승룡은 강원도 평창 오픈 세트에서 영화를 촬영하는 내내 ‘피리 부는 사나이’로 살았다. 그는 “아일랜드 피리라 생긴 것도 낯설고 연주하기가 까다로웠다”며 “다들 피리 소리 하면 지긋지긋해할 정도로 불고 또 불었다”고 말했다.

 류승룡의 작품목록에는 1000만 영화가 이미 세 편이나 있다.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추창민 감독), ‘7번방의 선물’(2013, 이환경 감독) 그리고 ‘명량’까지. 그는 “연기가 좋아서 하다 보니 주인공이 되고, 상도 받고, 광고도 찍었다”며 “다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도 밝고 유머러스한 편인가.

 “일은 즐겁게 하자는 게 철학이지만, 아무래도 감정을 소모하는 직업이라 혼자 있을 때는 조용하고 무뚝뚝하다. 20대부터 스타로 사는 게 익숙한 사람도 있겠지만, 난 마흔 넘어서까지 자유롭게 살다가 갑자기 달라진 환경과 시선을 경험했다. 적잖이 당황했고, 변했다는 얘길 들으며 힘든 적도 있었다. 백두대간 종주하듯 연기라는 길을 천천히 걷고 있다고 생각한 뒤부터 한결 편해졌다.”

 -종주의 골인 지점은.

 “정상을 향해가는 건 아니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이미 올라갔을 수도 있으니까. 종착점은 나도 모른다. 인생을 안다고 말하는 건 교만이다.”

 -배우로서 관객에게 할 수 있는 약속은.

 “누군가는 내 연기를 보고 아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솔직히 그게 내 한계다. 지금껏 했던 모든 연기는 죽어도 다시 못 한다. 그만큼 최선을 다했다. 앞으로도 거짓으로 연기 않고, 조금씩 나아지겠다.”

이은선 기자 haroo@joongang.co.kr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정현목 기자): 세련되게 잘 빠진 영화는 아니지만, 서양 동화를 빌어 타자에 대한 배척과 이기심으로 병들어가는 우리 사회에 경고장을 던진 신인 감독의 패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장성란 기자): 결정적인 대목이 밋밋하게 연출되는 바람에 극 중 판타지가 미덥지 않게 느껴진다. 그 판타지 위에 터뜨리는 극 후반의 공포 역시 헛헛하게 다가온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