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樂] 크레머의 바이올린엔 ‘차가운 열기’ 가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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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호 27면

미국의 현대음악 작곡가 필립 글래스(78). 미니멀리즘 작품을 주로 시도했다. Raymond Meier

세상의 모든 사물들 사이에는 궁합이 있다. 서로를 살리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도 있다. 남녀관계도 그렇고 음식도 그렇다. 선남선녀도 서로 싫어할 수 있으며, 수 천만원이 넘는 하이엔드 오디오도 서로 궁합이 좋지 않으면 제 값을 못한다. 한 가지가 궁금해진다. 음악과 계절에도 궁합이 있을까? 경험상으로는 조금은 있지 않을까 싶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는 제목에 맞춰 겨울에 주로 듣게 된다. 비장함마저 감도는 브람스의 ‘현악 6중주’는 가을에 손이 간다.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다. 음악과 계절의 궁합에 선호는 있으나 정답은 없다.

필립 글래스作 ‘미국의 사계’

 개인적으로 무더운 여름에는 클래식 음악이 귀에 잘 들어오질 않는다. 덥고 습한 날씨 탓에 음악이 가슴까지 내려가기 전에 눅눅해 지는 것 같다. 빨갛고 파란 여름 패션들을 보면서 회색빛 감도는 독일인들의 대위법을 들추는 것도 할 일이 아니다. 역시 여름에는 칵테일 한 잔과 보송보송한 보사노바 음악이 최고다. 맥주거품 묻혀가며 듣는 록 음악도 젊음의 계절에 어울린다.

 우리 음악으로는 폭포수를 뚫고 정수리에 시원하게 꽂히는 판소리가 으뜸이다. 방학 동안 삼국지연의를 읽던 기억을 떠올리며 듣는 판소리 ‘적벽가’는 평양냉면에 버금가는 여름철 별미다. 그런데 올 여름, 계절의 문턱에서 반갑게 날아든 선물이 하나 있다. 필립 글래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 ‘미국의 사계’다. 기돈 크레머와 크레메라타 발티카의 새 음반(작은 사진)이다.

 필립 글래스는 스티브 라이히와 함께 1960년대 중후반에 태동한 미니멀 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이다. 미니멀리즘은 음악에만 있었던 양식은 아니다. 조각·회화·건축 등 예술 전반에 걸친 하나의 흐름이었다.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슬로건 “작은 것이 많은 것이다 (Less is more)” 는 말처럼 미니멀 음악은 몇 가지 중심 모티브를 반복하면서 특정한 강세나 멜로디, 화성의 변화를 통해 음악 전체를 구성한다. 악보를 보면 컴퓨터 자판에서 ‘붙여넣기’를 여러 번 시행한 것 같은 음형들이 수 십번씩 반복된다. 반복되는 블록들은 모두 같은 듯 보이지만 사실 조금씩 생김새와 색깔이 다르다.

 필립 글래스의 경우는 대중친화적인 편이기 때문에 조성을 유지하며 반복이 심리적 기이함을 만들기 전에 탈출구를 만든다. 미니멀 음악 작곡가들은 재즈·팝아트·공공미술 등과도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었고, 음악의 진실성을 심연에서 찾기보다는 반복되는 표면부터 시작하였다. 때문에 비판가들은 이들의 음악이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무한궤도를 도는 소비 자본주의의 가벼움과 닮아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특히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필립 글래스는 그런 혐의를 자주 받는다. 그는 이미 50여편의 영화음악 작곡가로도 유명하다. 영화에 대한 그의 애정은 연속사진을 통해 영화의 가능성을 발견한 ‘달리는 말’의 작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를 소재로 한 음악극을 만들었다는 것부터 증명된다. 그가 작업한 영화로는 새로운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선보였던 ‘씬 블루 라인’과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를 담은 ‘디 아워스’와 TV 리얼리티 쇼의 허상을 보여준 ‘트루먼 쇼’등이 있다. 권력에 대항하는 개인을 그린 2014년 칸느 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리바이어던’에서도 그의 음악이 사용되었다.

 기돈 크레머가 연주한 필립 글래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미국의 사계’는 네개의 악장과 매 악장 앞에 붙은 짧은 무반주 바이올린 서곡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개 곡 후반부에 붙는 카덴차를 앞에 위치시킨 역발상이 신선하다. 무반주로 시작되는 첫 번째 서곡은 바흐와 이자이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를 묘하게 오마주해 놓은 듯한 인상이다. 이어지는 6분 가량의 첫 번째 악장은 반복되는 저현의 피치카토를 배경으로 하여 차가운 열기라는 형용모순이 어울릴 만한 기돈 크레머의 바이올린 비브라토가 오선지를 가른다. 11분 가량 연주되는 느린 2악장은 멜로디라인이 무척 아름다운 서정적인 악장이다. 세계가 모두 잠들어 있는 초겨울 새벽 2시, 홀로 깨어 있는 고독한 이들을 위한 음악이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필립 글래스의 음악이 자주 그러하듯 어느 영화의 한 장면 속에 흘러나왔던 것인양 친숙했다. 영화 ‘리바이어던’에서 거대한 고래뼈를 배경으로 음울하게 깔렸던 음악과 유사하게 들렸던 것이다. 물론 다른 곡이었다. 우수에 젖어 있으면서도 드라마틱한 구조 그리고 반복되는 패턴의 친숙함 때문에 2악장은 앞으로 방송에 종종 나올 것 같다. 이어지는 3,4 악장은 모두 빠르다. 반복되는 쳄발로 반주와 더불어 바이올린의 도약과 미묘하게 변화를 주며 가속하는 속도감이 음악적 긴장감을 팽팽하게 한다. 록음악을 들을 때처럼 발로 박자를 맞추게 된다. 특히 3악장과 4악장 사이의 완충부 역할을 하는 무반주 바이올린 서곡(여기서는 ‘SONG’ 이라고 명명한다)이 마지막 클라이막스 악장을 위한 지연 효과를 만들어낸다. 4악장을 듣다보면 반복의 임계점 저 너머를 향해주길 바라는 마음까지 들면서 은근히 글래스를 응원하게 된다.

 2010년 초연된 필립 글래스의 ‘미국의 사계’는 비발디의 ‘사계’로부터 아이디어를 가져온 것이다. 그렇지만 글래스는 선배 작곡가와 달리 계절을 지정하지 않았다. 어느 악장이 어느 계절과 궁합이 맞을지 해석의 자유로움은 듣는 이들의 것이다. 격정적인 연주에서 급격히 산화해버리는 글래스의 음악 이후 허전함은 영화 ‘화양연화’의 ‘유메이지의 테마’로 달래면 된다.

엄상준 KNN방송 PD 90emper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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