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대부분 불나면 '꽉 막힌 굴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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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번 사고에서 드러난 터널 안전시설의 가장 큰 문제는 비상상황에서 연기를 빼내는 환풍기가 작동하지 않고 조명이 꺼졌다는 점이다.

서울에서 가장 긴(전장 1천8백90m) 홍지문 터널은 1999년 개통됐다. 환기설비와 소화전.비상전화 등이 잘 갖춰져 있어 터널 내부에 연기가 가득 찼더라도 3분이면 모두 배출할 수 있다. 하지만 사고로 화재가 난 뒤 2,3분 후 기계실에서 전력차단기가 작동하면서 전원이 끊겨 모든 설비가 무용지물이 됐다.

터널관리사무소 관계자는 "터널에서 3.5㎞ 떨어진 기계실까지 가서 전력차단기를 수동으로 올린 9시36분이 돼서야 송풍기를 작동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비상 조명시설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리소 측은 정전이 되면 비상발전기가 작동해 8천9백개의 조명등 중 5백80여개가 곧바로 켜지기 때문에 대피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터널을 빠져나온 사람들은 "연기가 자욱한 상태에서 조명등은 보이지 않았다. 뒤에 멈춰선 차량의 전조등 불빛만이 대피 유도등 구실을 했다"고 말했다.

서울시 측은 "정전 원인을 조사 중이지만 전기 시설은 터널 위 천장에 분리돼 있어 사고로 인한 충격으로 누전.합선될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터널에 차량을 버리고 나온 오세근(35.회사원)씨는 "사고 직후 조명등이 잠깐 깜박이다 곧바로 모든 불빛이 꺼졌다"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서울시내 다른 터널들도 화재사고에 상당히 취약하다고 지적한다. 시내에 있는 터널은 모두 27개다. 이중 강제 송풍장치가 있는 곳은 길이가 1㎞ 이상인 남산 1~3호.홍지문.정릉.구룡 등 6개 터널과 8백10m 길이의 북악터널뿐이다.

1㎞ 이상의 터널 여섯곳 중 남산 1,2호 터널에는 사고시 다른쪽 터널로 이동할 수 있는 피난연결통로가 없다. 나머지 네개에는 다른 방향의 터널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는 방화문이 없다.

소방방재본부로 연결되는 자동화재 감지기가 설치된 터널은 남산2호 한곳뿐이고 스프링클러는 아무데도 없다.

신은진.민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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