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출퇴근 회담' 이벤트성 안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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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오늘 처음으로 남북 당국 간의 회담이 '출퇴근 형식'으로 치러진다. 제5차 남북철도.도로 연결 실무접촉회담에 참석하는 우리 대표단은 사흘간 날마다 서울을 출발, 임시도로를 통해 개성으로 가서 회의를 마친 후 서울로 돌아온다.

이러한 '출퇴근 회담'의 성사 그 자체는 회담의 실질적 무게를 떠나 남북 왕래사에 일보 전진한 것을 뜻한다. 이것은 그동안 진행된 남북 화해.협력 노력의 한 상징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작은 듯한 사실관계가 계속 축적될 때 남북의 하나됨이 촉진될 수 있다.

따라서 남북한은 이런 움직임을 일회성 쇼나 이벤트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남북이 각기 국내외 정세를 의식해 이런 방식을 추진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북핵사태의 파고 속에 북측은 날이면 날마다 '민족공조'의 끈을 남쪽에 강요하고 있다. 북한은 심지어 자기네 군사력이 '남(南)도 지켜주는 민족방위의 보루'라고 억지를 부리면서 남북공조에 의한 반미 연합전선 구축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북한의 그런 억지에는 반대하지만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선 남북간 화해분위기의 지속을 강조하고 있다. 남북이 목표는 다르지만 전술적 차원에선 이런 이벤트 성격의 행사 개최의 필요성을 은연중 공감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출퇴근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질 관계가 진전돼야 한다. 그러려면 대담한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북한은 자기의 군사력 과시에 의해 외부로부터 체제보장을 받겠다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국민을 살찌우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현대국가를 건설하면 체제보장 문제는 자연 해결된다. 그 길은 대외 협박을 통해서가 아니라 국제사회와 더불어 사는 방법을 수용하면 된다. 그래야 남쪽이 진정한 민족공조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우리 정부도 북한의 협박이 실재화할 위험성을 걱정해 마냥 북한을 달래는 정책에만 매달려선 안 된다. 북한이 핵문제를 풀지 않는 한 우리는 단호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쇼처럼 보이는 행사로썬 남북관계의 진전에 한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