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서울특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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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김종은 지음, 민음사, 8천원

올해 27회째를 맞은 오늘의 작가상은 1974년생 서울 토박이 소설가 김종은씨의 『서울특별시』에 돌아갔다.

비중있는 일본의 남·녀 작가가 편지를 통해 주고받은 문학담론을 담은, 지난주에 출간된 『필담』(현대문학)의 한 대목을 옮기면 문학을 읽는 것은 읽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재미 있어서 읽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문학이 재미 없는 사람은 읽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문학은 단순한 놀이와는 구별된다. 재미 없는데도 열심히 읽고 가르치고 그것에 대해 쓰는 계층이 존재하고, 문학을 재미있게 읽는 것은 ‘행복’을 안다는 것과 같은 것으로 정의된다.

문학을 읽는 일이 재미를 뛰어넘어 행복을 제공하는 계기로 격상한데는 문학이 껴안고 있는 윤리성이 작용했을 것이다.

'서울특별시'는 재미가 두드러진다. '재미있고 화나고 슬프고 즐거운' 대도시 서울에서 살아가는 '표면에서 미끄러지며 서로 만나고 부딪치고 대화하고 또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헤어지고 또다시 만나는' 인간 군상을 시종일관 코믹하게 그려 나간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가 된 74년생 동갑내기 찰리.호기.유진.중만 넷은 그러저럭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른이 되도록 변변한 직장 하나 붙잡지 못한 주변머리 없는 축들이다.

다만 '살펴 다스린다(察理)'라는 뜻의 한자 이름을 가진 찰리는 꼼꼼하면서 계획적이고, 유진은 여자를 다루는 '작업'에 일가견이 있고, 호기는 평소 꾹꾹 참아두었다가 결정적인 순간 강한 추진력을 발휘하는 등 독특한 개성의 소유자들이다.

특별히 잘나지 못했고 암울한 현실을 개선할 돌파구도 보이지 않자 찰리는 누구에게나 한번의 기회는 있고 한가지 재주가 있다는 근거없는 확신을 갖게 되고, 찰리의 선도에 따라 넷은 강원도 국도변의 새서울 휴게소를 털게 된다.

소설의 재미는 튀는 줄거리보다 네 친구 부모들의 서울 정착 과정, 네 친구의 출생과 성장과정, 사랑 등 현재적 고민 등을 코믹하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서 온다.

현숙이 16년간 사귄 중만을 차버리고 전격적으로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대목은 압권이다. 생리가 시작한 이래 한번도 주기에 오차가 없었던 점을 활용, 생리의 마지막 날이 신혼 첫날밤이 되도록 결혼날짜를 잡은 현숙은 처녀성을 간직해 온 것으로 감쪽같이 남편을 속이는 데 성공한다.

입이 귀에 걸린 남편이 강한 책임감마저 느끼자, 작가는 말도 안되는 감정이라며 조소한다.

'변두리 인생들의 휴게소 털이'라는 뼈대를 통해 작가는 여러가지 얘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가는 굳이 고향을 선택했다. 네 친구의 고향 서울은 매일 산소와 함께 일산화탄소.아황산가스.질소산화물 등을 제공하고 물 속에 발을 담그면 붉은 물집이 생기는 중랑천을 품고 있는 곳이다.

넷은 서울이 선진도시이고 살기 좋은 곳이라고 들었지만 차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믿었던 친구에게 속은 것처럼 분노하게 된다.

그렇다고 서울이 넷의 일탈을 직접 부추기지는 않는다. 고향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탈선할 친구들이 있겠는가. 일탈의 보다 직접적인 책임은 네 친구의 불우한 성장환경에 있을 것이다.

고향은 그 속에서 숨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공기나 분위기 같은 것이다.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간접적인 영향을 미쳐 구성원을 일탈로 몰고가는 고향 얘기를 통해 작가는 대도시 출생들에게 고향은 어떤 것인지를 묻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서울특별시'는 윤리적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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