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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석의 대동강 생생 토크] 물주머니·졸짱·굴포 총동원 … 북 ‘왕가뭄’과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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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북한이 지난해에 이어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곡물 생산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같다고 북한 언론들이 전했다. 황해남도의 농민들이 메마른 옥수수 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쌀을 비롯한 북한의 올해 곡물 수확량이 많게는 26%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AP=뉴시스, 중앙포토]

“왕가물(왕가뭄)을 잡아라.”

 북한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왕가물’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걱정이 크다. 지난해 가뭄의 영향으로 모내기를 하는 데 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6월 8일 현재 전국적으로 44만1560여 정보(1정보=3000평)의 모내기를 한 논에서 13만6200여 정보의 볏모 들이 말라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은 곡창지대로 알려진 황해남북도와 평안남도, 함경남도 등이다. 황해남도는 모내기한 면적의 80%, 황해북도는 58%의 논이 마른 상태다. 유엔식량농업기구는 쌀을 비롯한 북한의 올해 곡물 수확량이 12%에서 많게는 26%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이런 사태에 대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해 왔다. ‘물주머니’(저수지) 등 각종 ‘물잡이시설’(제방둑)을 건설해 흐르는 물을 저장하거나 ‘굴포’(논밭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웅덩이)와 우물을 파고 ‘졸짱’(땅속 깊이 관을 박아 땅속의 물을 끌어올리는 설비)을 박아 지하수를 퍼올려 물을 댔다.

 무엇보다 북한은 지난해 왕가뭄을 극복한 가장 큰 요인으로 포전(圃田)담당제를 꼽는다. 포전담당제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체제 출범 이후 도입한 제도다. 과거 북한은 수십 명에서 100명 정도까지 함께 농사를 지어 생산물을 대부분 국가에 바쳤다. 그러나 지금은 10~25명으로 구성된 분조를 가족단위인 3~5명으로 나눠 ‘포전’이라 부르는 논밭을 일구게 해 일부는 세금으로 내고 나머지는 실적에 따라 개인이 갖게 한다.

북한은 가뭄과의 싸움을 독려하는 포스터까지 제작해 주민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 포스터는 우물 파기, 졸짱 박기, 굴포 만들기 등을 가뭄 대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졸짱은 땅 속에 관을 박아 물을 끌어올리는 설비이며, 굴포는 논밭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웅덩이를 말한다. [AP=뉴시스, 중앙포토]

 개인에게 분배 몫이 돌아가다 보니 농민들이 증산을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고 한다. 북한 농업과학원 농업경영연구소 지명수 실장은 지난 28일 “포전담당제의 도입으로 지난해 왕가물이 들어닥친 불리한 기후조건에서도 알곡 증산을 이룩했다”고 밝혔다. 평균주의보다 성과주의가 낫다는 것을 북한도 알게 된 셈이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지난해엔 왕가물에도 불구하고 곡물 수확량이 571만t으로 2013년보다 5만t 증가했다.

 올해는 왕가물과 싸우기 위해 물절약형 농법을 본격적으로 도입한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농업 부문에서 물절약형 농법을 비롯한 과학농법들을 적극 받아들이라”고 지시했다. 벼영양단지모에 의한 모내기 방법이 이 농법의 하나다. 영양단지라 불리는 마른 논에 땅을 판 뒤, 모를 내고 포기마다 물을 주는 방식을 말한다. 물을 댄 논에서 모내기를 하는 재래식 방법과 다르다. 지난해 황해남도 배천군에서 이 방법을 사용해 2013년보다 물 소비량을 줄이면서 7000t을 더 생산했다고 한다.

 물절약형 농법 등으로 설령 왕가물을 이겨낸다 해도 걱정이 끝나는 건 아니다. 북한의 진짜 걱정은 큰물(홍수)이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에 따르면 박영남 평양 순안구역 협동농장 관리위원장이 “물절약형 농업 등으로 왕가물과는 싸워볼 만한데 장마철에 비가 오기만 하면…”이라고 걱정하는 대목도 나온다. 속담에 ‘가물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는 말이 있다. 가뭄은 아무리 심해도 거둘 게 좀 있지만 장마가 지면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다는 뜻이다.

고수석 고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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