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터 회장 사퇴 의사 번복?…FIFA 개혁 좌초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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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사퇴 시점을 미뤄선 안 된다. 즉시 모든 역할에서 손을 떼야한다"던 정몽준 FIFA 명예부회장의 일침이 선견지명이었을까. 사퇴를 선언한 블라터 회장의 복권 움직임이 감지돼 FIFA가 술렁이고 있다. 미국-스위스 사법당국의 수사로 물꼬를 튼 FIFA 개혁 작업에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블라터 회장은 29일 스위스 지역지 '발리제 보테'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FIFA의 새 회장후보는 아니지만, 현재까지는 선출직 회장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사퇴를 결정한 건 나 자신 뿐만 아니라 FIFA를 (수사당국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려는 의도였다"며 스스로를 '희생양'에 비유했다. 블라터 회장은 지난 27일에도 또 다른 스위스 지역지를 상대로 "나는 사퇴하지 않았다. 회장직에 대한 판단을 특별총회에 위임했을 뿐"이라 주장한 바 있다. 이런 발언을 두고 '블라터 회장이 사퇴를 철회하고 권력의 중심에 다시 서기 위한 꼼수를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블라터 회장은 앞서 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검은 돈을 받고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짙어지자 FIFA 회장 연임 직후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미국-스위스 사법당국의 공조 수사가 생각 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한숨 돌린 상황이다. 사법당국은 앞서 치른 2010 남아공월드컵과 조만간 열릴 2018 러시아월드컵, 2022 카타르월드컵에 대해 FIFA 고위 간부들이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증거를 다수 찾아냈지만, 블라터 회장이 개입했는지의 여부는 밝혀내지 못한 상태다.

블라터 회장이 사퇴를 철회하거나, 또는 차기 회장선거가 열리기 전 기존 권력을 모두 발휘한다면 FIFA 개혁도 '절반의 성공'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사법당국의 수사를 교묘히 방해하거나, 또는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이 차기 회장이 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정몽준 FIFA 명예부회장은 지난 3일 본지와의 단독인터뷰에서 "블라터 회장은 각종 비리로 얼룩진 인물이다. 즉각 사퇴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블라터 회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직후엔 "이번 사건을 계기로 FIFA를 개혁해야한다"면서 "필요하다면 나도 돕겠다"고 말했다.
세계축구계의 우려를 읽은 FIFA 개혁지지자들도 행동에 나섰다. 도미니크 스칼라 FIFA 회계감사위원장은 블라터의 발언이 보도된 직후 성명을 내고 "블라터는 회장이라는 자리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사퇴 의사를 명확히 표현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블라터 회장이) 권력을 놓고 기싸움을 벌일 시점은 이미 지났다고 본다"면서 "FIFA는 지도층 교체를 통한 개혁을 준비 중이다. 블라터 회장을 포함한 모든 관계자들이 뜻과 행동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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