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파" 퇴장에 협상무드 다소 상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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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스티노프」국방상은 크렘린의 권력승계과정에서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뿐이지 중요당내정책이나 후계자 결정과정에서 사실상의 제1인자 같은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브레즈네프」사후 후계자선출을 둘러싼 크렘린의 권력투쟁에서 그는 군부를 배경으로 정치국안에서도 한표 이상의 위력을 발휘했다.
이에 따라 그의 죽음은 크렘린 권력구조에 필연적으로 변동을 가져올 수밖에 없고 소련의 대외정책, 특히 미국과의 핵무기협상에서도 상당한 변화를 기대하게 한다.
앞으로 크렘린지도부의 연령을 낮추는데 그의 죽음은 상당한 자극을 줄 것이 틀림없다. 「스탈린」시대부터 소련의 주요직책을 맡았던 인물은 이제 외상「그로미코」한사람밖에 남아있지 않게 된 것이다.
「우스티노프」가 병석에 누워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동안 젊은 세대를 대표한 「고르바초프」는 의기양양하게 서방보도기관의 각광을 받으며 그동안 중단돼왔던 서방과의 핵무기제한협상을 해야한다고 적극적인 제스처를 보였다.
「우스티노프」가 병석에 눕기전 소련에서 거의 금기처럼 돼왔던 군축문제가 다시 거론돼 「체르네코」당서기장이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1월부터 제네바의 협상테이블에 미소대표가 1년만에 다시 마주 앉기로 한 것도 이러한 소련정치구조 변화와 관련된 것들이다.
「우스티노프」는 군사문제에 관한 한 「로마노프」 「그로미코」와 함께 대서방강경노선을 주장해온 인물이었다. 이 세 사람은 군비확장·팽창정책·대미강경노선을 이끌어온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강경노선은 「우스티노프」가 병석에 눕고나서부터 후퇴해 왔었다.
그런 정세변화는 지난 11월말에 있었던 소련공산당중앙위가 있기까지의 소련의 태도변화, 「체르넨코」의 자신만만한 재등장이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것들이다.
군부를 배경으로 했던 소련강경파들의 세력약화는「우스티노프」의 죽음으로 앞으로 얼마간은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비록 「우스티노프」가 군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는 군복을 입은 국방상으로서 유일한 정치국 멤버였다. 그가 죽음으로써 정치국에는 이제 직접 군부를 대표하는 인물이 없게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군부의 정치개입을 두려워 해왔던 크렘린 지도자들은 예외적으로 정치적인 발언과 행동을 활발히 했던 「오가르코프」를 거세, 소군부가 또다시 정치문제에 개입못하도록 함으로써 하나의 쐐기를 박았던 것이다.
「우스티노프」의 죽음은 그런 뜻에서 「체르넨코」 「티호노프」수상 및 「고르바초프」로 대표되는 대서방협상파들의 입장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이 3명의 인물은 군비확장보다는 경제에 더 많이 투자하는 쪽으로 정책을 이끌어왔다.
「우스티노프」의 후임 국방상으로 예상할 수있는 인물로는 현재 세 사람을 꼽을 수 있다.
현재 3명의 국방차관중에서 2명, 아니면 정치국원겸 중공업담당 서기인 「로마노프」가 물망에 오르고있다.
가장 유력하게 꼽히는 인물이 81년부터 소련군지상군총사령관을 맡고있는 「이바노비치·폐트로프」대장, 아니면 또 하나의 차관「소콜로프」대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로마노프」가 거론되는 것은 그가 군수산업에 정통한 당관료로서 현재 안보문제및 군수산업을 담당하고 있는 군부의 대변자라는데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김동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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