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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하늘 휘저었던 88세 전쟁영웅의 ‘마지막 비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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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월 11일 김두만(당시 25세) 공군 소령은 미국산 F-51 전투기를 몰고 금강산 부근 상공을 날고 있었다. 금강산 계곡에는 동부전선을 지원하는 북한군 보급창이 있었다. 로켓으로 동굴을 공격하려고 너무 낮게 하강하다 김 소령이 탄 전투기는 산에 부딪힐 뻔했다. 급히 조종간을 당겨 가까스로 충돌을 면했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김 소령이 전투기에서 내리자 동료 조종사들이 달려들어 목말을 태워주며 축하했다. 대한민국 공군 최초의 100회 출격 기록을 세운 순간이었다. 김 소령은 당시 ‘조종복을 입고 조종석에 앉으면 그때부터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이다. 오직 내가 할 일은 그것뿐’이라는 소감문을 남겼다.

 그로부터 63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 23일 오후 1시40분 강원도 원주기지.

 71년 8월 공군참모총장을 끝으로 전역했던 김두만(88) 예비역 공군 4성장군이 첫 국산 초음속 전투기인 FA-50에 몸을 싣고 전역 후 44년 만에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후배 조종사 한성우(37·공사 51기) 소령과 짝을 이뤄 후방석에 앉은 김 전 총장은 충북 음성·진천과 경기도 일대, 강원도 강릉과 철원(철의 삼각지대) 상공을 50분간 비행했다. 김 전 총장이 6·25 때 직접 작전비행을 한 곳이다. 김 전 총장이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기지에 도착하자 공군 제8전투비행단 103전투비행대대 소속 후배 조종사들이 달려들어 63년 전처럼 목말을 태웠다.

 김 전 총장은 24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6·25 때 탔던 전투기가 아날로그라면 지금은 디지털”이라며 격세지감을 말했다. 동승한 한 소령은 “6·25전쟁 호국 영웅을 모시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비행해 영광”이라며 “선배님의 헌신과 희생정신을 이어받아 영공을 수호하겠다”고 다짐했다.

 88세 미수(米壽)인 김 전 총장이 전투기를 다시 타게 된 것은 지난해 10월 FA-50 전력화 행사장에 간 것이 계기였다. “당시 FA-50을 보니 날렵해 직접 타보고 싶었다. 그래서 최차규 공군참모총장에게 죽기 전에 국산 전투기를 꼭 타보고 싶다고 했는데 기회가 마련됐다”고 한다.

 김 전 총장은 “49년에 소위(사관후보생 5기)로 임관했는데 그해 10월 1일 공군이 창설됐고, 이듬해 6월 전쟁이 터졌으나 공군에 전투기가 한 대도 없었다”면서 “L-4, L-5 연락기 20대에다 50년 5월 국민 성금 35만 달러로 도입한 캐나다산 T-6 훈련기 10대가 고작이었다”고 말했다. 65년이 흐른 지금 공군은 F-15K와 FA-50 등 750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 김 전 총장은 “평화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능력과 노력 여하에 달려 있고 우리가 강해야 평화가 유지된다”고 강조했다.

장세정·정용수 기자 zhang@joongang.co.kr

[움카 보러가기] 공군 최초로 100회 출격한 88세 노병의 마지막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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