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잉원, 유일한 민주 지도자’ 타임 표지 제목 가린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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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 3일 워싱턴을 방문한 차이잉원 민진당 주석(왼쪽 둘째)이 존 매케인 미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장(셋째)과 의원실에서 환담하고 있다. [사진 차이잉원 페이스북]
미국 시사주간 ‘타임’ 아시아판 최신호 표지. [사진 차이잉원 페이스북]

시사주간 ‘타임’은 이번 주 아시아판의 표지인물로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민진당 주석을 선택했다. 내년 1월 총통 선거에서 그의 당선 가능성을 높게 봤기 때문이다. 인터뷰 기사엔 아예 ‘차기 총통이 자신을 말하다’란 제목을 붙였다. 중국청년망이나 봉황망 등 중국·홍콩의 상당수 매체들은 이 소식을 전하면서도 표지에 실린 커버스토리 제목에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그가 중화권 유일의 민주 체제를 이끌게 될 수 있다’(She could lead the only Chinese democracy)는 제목을 가린 것이다. 필경 중국 당국의 보도 지침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유일의 민주체제’란 표현에 대한 불만과 동시에 차이 주석을 바라보는 베이징의 불편한 시선을 드러낸 것이다.

 중국의 이런 태도는 민진당 집권이 양안 관계와 미·중 관계에 불러올 파장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과 차이 주석이 2016년 각각 대통령과 총통에 당선될 경우 양안관계는 매우 위태로워질 것”이란 인민정협보의 보도는 중국 당국의 속내를 가감없이 드러낸 말이라 할 수 있다.

  민진당은 반년 앞으로 다가온 총통선거에서 8년만의 정권교체를 노린다. 본격 선거전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지금 상태대로 간다면 민진당이 승리할 것이란 게 지배적인 예상이다. 민간 조사단체인 지표민조가 지난 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차이가 40.7%의 지지율로 국민당 훙슈주(洪秀柱)의 30.5%를 앞섰다. 국민당은 지난해 11월 지방선거 참패의 후유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국민당 부진의 상당 부분은 급격한 양안 접근에 대한 대만인들의 경계감에서 비롯된다. 마잉주(馬英九) 총통 집권 기간 대만은 중국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하는 등 경제적·인적 교류를 급속히 확대하면서 대(對)중국 의존도가 크게 높아졌다.

 민진당은 급격한 양안 접근에 반대하는 세력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있다. 베이징 당국은 힘들게 쌓아온 양안 관계가 대만독립 성향이 강한 민진당의 집권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민진당 출신의 첫 총통인 천수이볜(陳水扁) 집권 시절 양안 관계가 일촉즉발로 치달았던 전례가 있다.

 차이는 “집권하더라도 양안 관계 현상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급격한 변화를 원하지 않는 유권자들을 안심시키는 발언이다. 하지만 중국이 요구하는 ‘92 컨센서스’에 대해서는 뚜렷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이되 호칭 등은 각자 편리하게 한다는 합의를 가리키는 것이다. 중국은 이를 양안관계의 최저선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민진당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마샤오광(馬曉光) 국무원 대만판공실 대변인은 "차이 주석은 핵심 문제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차이가 미덥지 못하다는 의미다.

 이달 초순 차이의 미국 방문도 중국 당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미국은 국무부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청사에서 차이를 접견하는 등 이례적으로 예우했다. 대만 인사와는 정부 청사가 아닌 외부에서 만나던 관례를 깨뜨린 것이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어긋난다며 공식 항의했다. 차이가 "미국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한 연설도 중국의 반발을 샀다. 중국 뉴스사이트인 관찰자망은 "미국의 군수산업 관계자를 기쁘게 하는 발언이며, 양안간의 평화로운 발전을 수호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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