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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랑해" 아빠의 2배 … 딸 선호한다지만 "사랑해 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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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아빠!”(딸) “응?”(아빠) “엄마 못 봤어?”(딸)

 최근 한 음료수 제품 TV 광고 ‘대화 회복’ 편에 등장하는 일명 ‘투명 아빠’의 모습이다. 한국 가족에서 아빠에 대한 애착 정도가 엄마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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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와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가 지난 7년6개월간(2008년 1월 1일~2015년 6월 9일) 빅데이터 70억 건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이런 세태가 확인된다. ‘사랑’과 관련된 감성연관어 중 상당수가 가족에 집중돼 있었다. 또한 흔히 가족 간 ‘내리사랑’이 더 크다는 통념과 달리 한국인은 온라인상에서 자식보다는 부모에 대한 사랑을 자주 표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족 구성원별로 ‘사랑한다’는 표현의 대상이 되는 횟수가 확연하게 차이 났다. 일종의 ‘가족 사랑 서열’이 형성돼 있는 셈이다. 가족 사랑의 서열 1위는 ‘엄마’였다. ‘사랑’ 연관어에서 ‘엄마’가 언급된 건수는 23만1775건으로 가족 구성원 중 가장 많았다.

 ‘아빠’에 대한 언급은 11만4738건(3위)으로 엄마의 절반 수준이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자식들이 아빠에 대해 가지는 애정이 엄마보다 현저히 약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숙명여대 이명화(사회심리학) 교수는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아빠가 주로 가족 내 경제권·의사결정권 등 권력을 행사하고, 엄마는 자식을 돌보는 등 감정적 교류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최근 ‘아빠를 부탁해’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이 아버지가 가족에 헌신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가족 커뮤니티에서 아빠에 대한 애정도가 낮다는 인식에 기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모들은 딸보다는 아들에게 사랑 표현을 더 자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들에게 사랑한다고 언급한 건수(9만9679건)가 딸에게 언급한 건수(8만7771건)보다 13.6% 높았다. 최근 젊은 부부들 사이에 딸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과는 배치되는 결과다. 숙명여대 이복실(가족자원경영학) 교수는 “가족학적으로 엄마와 딸이 친밀해지는 경우는 주로 자녀의 결혼 전후며, 양육 과정에서는 딸보다는 아들에게 사랑 표현을 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온라인상에선 젊은 엄마들이 자주 글을 올리기 때문에 아들에 대해 사랑을 표출하는 횟수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부부간 사랑 표현은 ‘일방통행’이었다. 사랑과 관련해 ‘아내’를 언급한 건수는 6만9990건으로 가족 구성원 중 6위를 차지했지만, ‘남편’은 순위권 안에 없었다. 여성들이 결혼 후 가족에 대한 애정을 대부분 남편에게서 자식으로 옮겨 가는 현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본지가 성인 남녀 26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부부 혹은 연인(이성) 사이에서 기대하는 사랑의 유효 기간’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중 41.5%가 ‘평생’이라고 답했다.

 한국인은 가족을 제외할 경우 ‘친구’에게 가장 큰 사랑을 느꼈다. 분석 결과 사랑과 관련해 ‘친구’를 언급한 건수는 18만1235건으로 ‘엄마’ 다음으로 많았다. ‘아이’를 언급한 건수도 16만6134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이 밖에도 ▶여자(13만8824건) ▶남자(13만1090건) ▶오빠(9만4404건) 등이 많이 나왔다.

 한국인은 어떨 때 ‘사랑’이란 감정을 가장 크게 느끼는 걸까. 본지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42.7%가 ‘나의 마음이나 행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줄 때’라고 답했다. ‘매력적인 모습을 봤을 때’(16%)나 ‘힘든 순간 내 곁을 묵묵히 지켜줄 때’(15.3%)보다 3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반면 ‘나에게 사랑을 표현할 때’라고 응답한 비율은 5%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가족 중심의 문화가 깊이 뿌리내린 한국 사회의 특성이 빅데이터로 입증됐다”고 말한다. 성신여대 채규만(심리학)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형태가 ‘싱글 패밀리(1인 가구)’ 등 다양한 형태로 재편되고 있지만 가족 자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여전히 공고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채 교수는 “사회가 아무리 변해도 가족은 한국 사회의 기본 단위”라며 “가족 간 사랑은 사회 전체의 유대감을 키우는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사랑한다’는 흔한 말=한국인들은 서로에게 실제로 얼마나 “사랑한다”는 표현을 할까. 본지가 성인 남녀 26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하루에 1~2번’이라는 응답이 34%로 가장 높았다. ‘한 번도 안 한다’(16.4%)의 두 배 수준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어색하고 불편하게 여기던 과거에 비해 사랑 표현이 자연스러워졌다는 얘기다.

 빅데이터에선 부모를 향해 사랑 표현을 하는 자식이 많았지만 설문조사 결과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 건 부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누구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27.6%가 ‘자식’을 꼽았다. ‘부모님’이라고 답한 비율은 3.8%에 그쳤다. 연인(26.4%)과 배우자(20.7%)라는 응답이 각각 2, 3위를 차지했다.

 온라인 공간에선 ‘사랑한다’는 말이 아이돌 스타에 대한 애정 표현으로 빈번하게 언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빅데이터 분석에서 아이돌 스타를 분류 기준에 포함시켰을 경우 ‘엑소(EXO) 오빠’ ‘틴탑 오빠’처럼 아이돌 스타를 뜻하는 ‘오빠’와 관련된 언급 건수가 328만2526건으로 가족 구성원을 포함한 전체 연관어 중 가장 많았다. ‘언니’에 관한 언급 건수도 83만1715건이었다. 아예 ‘엑소’(41만4331건)나 ‘틴탑’(39만8709건)처럼 특정 그룹에 관한 언급도 많았다.

이에 대해 경희대 송경재(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는 “실생활에서 ‘사랑한다’는 표현은 다시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는 점에서 상호 작용에 가깝지만 SNS에서의 사랑 표현은 일방적인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정강현(팀장)·유성운·채윤경·손국희·조혜경·윤정민 기자 fon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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