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관리받던 탈북자 미국 가서 복면 증언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미국 상원 청문회에 복면을 쓰고 나와 북한의 인권탄압상을 고발하는 증언을 한 두명의 탈북자(사진)가 우리 정부의 관리를 받아온 남한 거주자라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들이 미 상원에서 증언할 때까지도 이들의 방미 목적과 계획을 알지 못했고, 신원조차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나 정부의 탈북자 관리대책에 구멍이 뚫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3일 국회에서 비공개로 열린 정보위 간담회에서 밝혀졌다. 간담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탈북자 두명이 미국에 간 지 이틀 만에 상원에 나가 증언했는데도 정부는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며 "아직도 돌아오고 있지 않은 것은 망명을 위한 것이 아니냐"고 추궁했다.

국정원 측은 "이들이 관광목적으로 합법적 절차를 밟아 여권과 비자를 받아 출국했으며 (국정원이)증언 계획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답변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이들이 미국에 도착한 지 이틀 후 곧바로 상원에서 증언했다는 점은 이미 출국 전 국내에서 미 의회나 정보기관 관계자들과 사전 접촉하면서 증언 문제 등을 협의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정보위의 한 의원은 "정보기관이 사전에 이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미국측 정보기관과의 공조문제에도 허점이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고영구(高泳耉)국정원장은 황장엽(黃長燁)씨의 방미에 대해 "미국 정부 당국이 신변안전에 관한 확실한 추가조치를 취할 경우 방미를 허용하겠다"고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黃씨가 지난 4월로 특별보호대상에서 해제돼 민간인 신분이 됐지만 특별보호가 필요한 고위 망명자인 만큼 신변안전에 대한 확실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정민 기자jm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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