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0)제81화 30년대의 문화계(123)장난심했던 이용우화백|조용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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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묵로 이용우는 이당 김은호가 1912년 우리나라 최초의 서화학교인「서화미술회」에 입학하였을때 1년 선배이었고 l922년의 조선총독부주최 미술전람회때 이당의『미인승무도』와함께 묵로의 『고성춘심』이 4등을 탔다. 청전과 심산은 「서화미술회」에서 묵로의 후배이었으므로 이당 다음으로 묵로를 드는것이 순서일것이다.
묵로 이용우이야기는 앞서 많이 나왔으니 그 인품과 기행을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을것이다.
이당이나 청전·심산은 별로 이야기거리가 없는 근직한 화가이지만 묵로는 그 해괴한 행동때문에 이야기거리가 얼마든지있다. 이당의 딱딱한 이야기를 하였으니 이번에는 또하나 묵로의 장난을 이야기하기로한다.
앞서 이야기 한대로 묵로는 조석으로 청년회관뒤에 사는 정재 최우석의 집에 들러 술타령을 하였는데 정재가 집에 없다든지 대문을 얼른 열지않으면 발길로 대문을 차기가 일쑤였다.
어느날 행인 이승만이 그림을 부탁하러 아침 일찍 최우석의 집에 들렀더니 정재가 대문을 뚝딱거리고 고치고 있었다. 그집 대문온 프른칠을 한 널빤지로 만든 문이어서 발길질하기 좋았다.
행인이 정재더러『아침부터 무엇하는거야?』하니까『묵로놈 때문에 죽겠네. 어제 저녁에 내가 집에 없었는데 있으면서 문을 열지 않는다고 발길로 문을 차서 이지경을 만들어 놓았으니 어떡하나!』하고 투덜거리면서 쪼개진 대문짝을 고치더라는 것이다.
신문사에 나온 묵로한테 행인이 그 이야기를 했더니, 묵로말이 정재가 요새 소실을 얻어가지고 집에 잘 안 들어온다는데 어디보자고 하면서 무엇을 벼르는 눈치였다.
그런지 며칠뒤에 묵로가, 나타나 우리들한테 이런 이야기릍 또 하였다.
그전날 초저녁에 술이 약간 얼근해서 묵로는 정재 집에 갔었다. 가서는 다짜고짜로 대문을 박차면서『정재녀석이 요새 첩한테 미쳐 친구도 몰라보는데, 어디 그첩년이 있거든 냉큼 이리 나오너라…』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랬더니 정재가 없는지 아무 대답이 없다가 별안간 안에서 거센여자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내가 첩년이다. 그래 나갈테니 어떻게 할테냐!』하고 마루에서 내려와 대문으로 나올 기세였다. 정재가 안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첩이란 여자는 그때 마침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 어떡하나. 걸음아 나살려라하고 그냥 뛰어 도망쳤지!』
묵로는 껄껄거렸고, 우리도 크게 웃었다.
묵로는 이런짓을하고 다녔는데 언젠가 밤늦게자는데 묵로와 정재 두 술귀신이 원서동 우리집에 와서 나를 불러냈다.
『어서 옷입고 나와! 남들은 이렇게 고생을 하면서 술을 마시러 다니는데 펀안하게 자는게 무어야.』
이것은 정재의 목소리이었다. 술을 마시느라 고생하고 다닌다는것은 정재의 상투문자이었다.
이렇게해서 한밤중에 나를 끌고 단성사건너편에 있는 동양루선술집으로 갈 작겅이었다.
원서동에서 돈화문을 지나 단성사까지 가려면 권농동을 지나야한다. 이당은 권농동에 살고있었다. 『이당을 한번 혼내 줄까?』
묵로는 별안간 이런 소리를 했다. 나는 밤중에 무슨짓울 할까보아서 묵로를 말렸다. 그러나 묵로는 말을 안듣고 왼쪽 권농동쪽으로 자꾸갔다. 정재와 나는 이당집 골목밖에 서있었다.
『이당, 너 세필로 미인도나 그리는 놈이 그게 화가냐….』
묵로는 담밖에서 이렇게 소리지르고 우리쪽으로 뛰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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