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즐거움|생각하는 삶을 위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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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엄정식 서강대교수·철학]우리는 주위에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목격하고, 만나며 또 그들과 어울려 산다. 그 중에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들도 많아서 어떤 사람은 운동을 잘하고, 어떤 사람은 그림을 잘 그리기도 하며 또 어떤 사람은 공부를 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훌륭한 사람이란 무엇을 잘하는 사람일까. 물론 훌륭한 사람 가운데는 운동을 잘하거나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도 있고 공부를 잘하거나 그밖에 다른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런것들을 잘한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되는것은 아니다. 예를들어 운동을 잘하는 사람가운데는 난폭한 사람도 많으며 돈만 밝히는 화가가 있는가 하면 공부를 잘해서 결국은 탐관오리가 되는 선비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무엇을 잘해야 훌륭한 사람이될수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사람은 한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십분 발휘할때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한다.
그것은 기사가 바둑을 잘둘때 훌륭한 기사가되고 성악가가 노래를 잘 부를때 훌륭한 성악가가 되는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다.그런데 한 인간으로서 기능을 다한다는것이 무슨 뜻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기능 (arete)을 크게 셋으로 나누는데 첫째는 영양을 섭취하고 생식을 하는 기능이고 둘째는 무엇에 감각하고 욕구하는 기능이며 세째는 이성을 발휘하여 깊이 생각하는 기능이다.
이 중에서 첫번째와 두번째것은 식물이나 짐승들도 가지고있는 기능이므로 인간에게만 고유한것은 결국 이성을 잘 발휘하는 기능 뿐이다.
따라서 훌륭한 사랍이 된다는것은 이 기능을 잘 구사하여 사려깊은 사람이 되는것을 의미하게된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아무리 훌륭한 군인이나 정치가, 혹은 학자라도 사려가 깊지않으면 훌륭한 인간은 될수없는 셈이다. 그가 인간을 「이성적 동물」로 규정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것이다.
인간은 사색을 즐기고 사물에 대한 깊은 통찰과 식견을 갖추어 인간으로서 바람직한 삶을 살수있으며 이러한 삶을 사는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곧 삶의 목표가 된다. 그는 이것을 「지복」 (eudaimonia)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좋은음식을 먹고 자식을 많이 낳거나 관능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상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잘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에 잠시 머물러 있어서는 인생의 궁극적 목표인 지복에 도달하였다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그는 한결같이 사려깊은 태도나 습성 (hexis)을 덕 (arete)이라고 하였으며 이러한 덕을 갖추어야 인간은 비로소 훌륭한 삶을 살수있다고 보았다. 좋은 일을 하는 버릇을 길러야 종은 성품이 생기고 이러한 성품울 지녀야 바람직한 인간이 될수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습성을 길러야 훌륭한 성품을 지닐수 있는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서 「중용 (mesotes)」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음식을 너무 적게먹으면 굶주리게되고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게 된다. 그러나 적당히 먹으면 기분이 매우 상쾌하고 건강에도 좋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위험한 지경에 처했을때 너무 겁을 먹으면 비겁해지고 너무 배짱울 부리면 만용이 나타난다.
여기서 이 두 극단을 피하면 「용기」라는 덕을 갖추게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색과 낭비라는 극단을 피해서 중용을 찾으면 「절제」가 나타나고 오만과 비굴을 극복하면 「긍지」라는 중용의 덕이 생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중용을 찾는것이 결코 쉬운일이 아니며 따라서 훌륭한 인간이 되는것도 매우 어려운 일임을 강조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원의 중심을 찾아내는 것은 누구나 할수있는 일이 아니고 다만 이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만 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성을 내거나 돈을 주거나 돈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적절한 사람에게 적절한 정도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동기에서 적절한 방식으로 행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요, 또 쉬운 일도 아니다. 그러므로 훌륭하다는 것은 드문 일이요, 칭찬할만 하고 고귀한 일이다.』
공자도 『중용을 가려서 단한달도 지키지 못한다 (택호중용이부능기월수야)』고 털어놓을 정도이니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할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용은 바람직한 인간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어서 사람마다 중용점이 다르고 그것을 어디에 설정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종류가 규정되기도 한다. 예를들어 재벌의 인색은 가난한자의 낭비가 될수도 있고, 군인의 용기는 학생의 만용이 될수가 있듯이 사람마다 중용의 행위가 다르다는 것이다.
공자는 이것으로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기까지 하며 「군자의 중용은 군자로서 때에따라 맞게 하는것이요, 소인의 중용은 소인으로서 기탄이 없는것이다 (군자지중용야 군자이시중,소인지중용야소인이무기탄야)』라고 말한다.
이처럼 동서고금의 현철들이 바람직한 인간이 되기위한 조건으로 한결같이 중용을 내세운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무슨 분야에서 얼마나 뛰어나든지간에 우리는 먼저 한 인간이 되어야 하며 그렇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중용의 덕」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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