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한 달…병원계에 부는 변화의 바람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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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중앙포토

오는 20일이면 국내 첫 메르스 확진자가 나온 후 정확히 한 달이 된다. ‘환자 발생이 소규모에 그칠 것’이라던 최초 예상과는 달리 1~2차 유행을 거치며 18일 기준 확진자는 165명으로 늘었고, 격리자는 6,000명을 넘어섰다. 사망자도 23명에 이른다.

불과 한 달 새 의료계에서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확진자가 나온 병원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병의원들도 환자가 급격히 감소하는 등 피해가 큰 상황이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간 묵혀뒀던 의료계의 고질적 문제들을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바뀐 것] 확진자 나오든 안 나오든…‘썰렁해진 병원’

일선 병의원에선 환자가 줄어도 이렇게 줄 수 없다는 반응이다.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거나 경유한 곳이 아닌 곳도 외래환자 감소, 예약 취소 등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규모가 작은 의원급 의료기관의 피해가 막심하다.

경기도에서 작은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A원장은 사태가 길어지면서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깊은 한숨과 함께 “그래도 처음엔 20~30% 정도에 그쳤는데, 지금은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절반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마음 같아선 차라리 사태가 끝날 때까지 문을 닫고 싶지만 2주만 문을 닫아도 바로 폐업으로 연결되니 그럴 수가 없다”고 막막해 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메르스 보균자가 오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확진자가 다녀간 병원이라고 소문이라도 나면 그 길로 폐업에 가까운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열이 나는 환자가 오기라도 하면 괜히 신경이 쓰인다”며 “한 명이라도 다녀가면 병원 전체를 멸균소독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사정은 비교적 규모가 큰 병원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전남에서 400병상 규모의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B원장은 “이번 사태가 대형병원 응급실을 중심으로 퍼지지 않았냐”며 “다들 병원에 오길 꺼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평소보다 적어도 30%는 빠져나간 것 같다”며 “여기에 환자감소로 인해 직원들도 출근해서 멀뚱멀뚱 있다가 퇴근하는 경우도 많다. 직접적인 손해와 더불어 이러한 인건비 등을 합치면 얼마나 손해가 난지 파악해볼 엄두도 못 낸다”고 말했다. 그는 “사태가 마무리되면 정부가 피해보상을 해준다곤 하나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써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바뀔 것] 간병 문화·의료쇼핑 문화 바뀔까…수가구조 개선도 기대


국내외 전문가들은 이번 메르스 사태가 당초 예상과는 달리 급속도로, 광범위하게 번진 이유를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의료시스템과 구조, 문화에서 찾는다.

메르스 상황점검을 위해 긴급 방한한 WHO 합동평가단은 “한국만의 독특한 병원 문화도 메르스 사태에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했다. 일부 병원에 대한 과도한 쏠림현상과 응급실 이용행태, 간병인이 아닌 보호자에 의한 간병문화, 의료쇼핑 관행 등이 2차 확산의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를 제외한 미국, 일본, 영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은 간호사 혹은 전문 간병인 중심의 간병 체계가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또 병실에 보호자용 간이침대가 아예 없거나 환자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는 등 보호자나 가족의 병실 방문이 엄격히 제한돼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간호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환자의 가족이나 사설 간병인에게 간병업무를 맡겨야 하는 실정이다. 병문안객의 면회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현재까지 알려진 확진자 163명 중 36%인 58명이 이처럼 병원을 찾은 환자의 가족이나 방문객이었고, 이 가운데 간병인도 7명이나 됐다.

대부분의 병실이 ‘6인실’로 운영되고 있는 점도 지적됐다. 좁은 병실에서 다닥다닥 붙은 6개의 병상이 감염병 확산의 온상이 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가족과 간병인이 자유롭게 드나든다는 점에서 6인실은 사실상 12인실 이상인 셈이다.

이에 따라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산적한 의료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이미 정부는 지난해부터 일반병실 기준을 4인실로 넓히고, 대형병원의 일반병실 의무 확보비율을 종전 50%에서 70%로 늘리고 있다. 또 간호체계 개편을 통해 간병을 간호사가 전담케 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6인실과 가족 간병 관행은 문화적인 문제가 아닌 비용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만큼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크다. 즉, 현재의 다인실-가족간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저수가 체계의 구조적인 개편이라는 것이다.

실제 정부가 추진 중인 포괄간호제의 경우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제도를 시행하기 위해선 추가로 6만5000명의 간호인력이 더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같은 인력을 구하기도 힘들뿐더러 여기서 발생한 추가비용을 수가로 보전해줄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B원장은 “이번 사태는 삼성서울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제도 자체의 문제가 곪아터진 것”이라며 “과밀화된 응급실과 저수가로 인한 손쉬운 병원이동, 무조건 큰 병원만을 고집하는 행태 등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선 좁게는 감염병 예방을 위한 정책부터 넓게는 가족간병 및 다인실 구조 개선을 위한 여러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의료계의 고질적이고 근원적 문제들이 개선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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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구 기자 kim.jingu@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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