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득의 행복어사전] 짬짜면이 왜 맛없나 했더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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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호 34면

중국집에 가면 나는 항상 우울하다. 짜장면을 먹고 싶기 때문이다. 짜장면을 먹고 싶으면 짜장면을 먹으면 되지 않는가, 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 살면서 그동안 내가 겨우 얻은 진리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아무리 쉽고 단순해 보이는 일도 알고 보면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기 때문에 숲 속에 난 두 갈래 길을 동시에 다 갈 수는 없다. 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 한 길을 취하고 다른 길을 버려야 한다. 그렇게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이 생기게 마련이다.

만일 프로스트가 점심을 먹기 위해 중국집에 왔다면 그 역시 우울했을 것이다. 중국집에도 두 갈래 길이 나 있다. 짜장면과 짬뽕. 한번에 두 가지 음식을 다 먹을 수는 없다. 짜장면이 검다면 짬뽕은 붉다. 짜장면이 달콤하다면 짬뽕은 매콤하다. 둘 다 맛있다. 짜장면을 취하면 짬뽕이 아쉽고 짬뽕을 택하면 짜장면이 안타깝다.

중국집에서는 최상의 선택이란 없다. 생각해보면 선택이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숲 속에는 두 갈래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 갈래, 네 갈래 길도 있다. 더 많은 여러 갈래 길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애쓰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 확률상 최상이나 최선은 우리가 취한 것보다 우리가 버린 것 속에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우리가 선택하는 것은 언제나 하나지만 선택할 수 있었던, 그러나 결국 선택하지 않았던 것은 여럿이기 때문이다.

짜장면을 주문하려고 하면 짬뽕이 떠오른다. 짬뽕은 닭이나 돼지뼈로 육수를 낸 국물에 고춧가루나 고추기름을 써 얼큰하고 매콤한 맛이 난다. 붉은 국물 속에는 돼지고기와 칼집을 낸 갑오징어, 새우, 홍합, 해삼, 소라 같은 각종 해산물과 표고버섯, 죽순, 양송이버섯, 청경채, 양파, 생강, 마늘 같은 것들이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가득 들어있다.

이번에는 짬뽕을 먹으려고 결심하면 짜장면이 유혹한다. 삶은 국수 위에 짜장이 덮혀 있다. 짜장에는 돼지고기 간 것과 파, 생강, 양파, 호박 등 여러 가지 다진 야채가 춘장에 버무러져 있다. 고명으로 오이채, 달걀 지단, 삶은 새우 그리고 완두콩이 올려져 있다. 역시 짜장면을 주문해야 할까?

나는 중국집에 가면 항상 우울하다. 짜장면을 먹고 싶지만 짬뽕도 먹고 싶기 때문이다. 대개 토요일 점심에는 동료들과 함께 사무실 근처 중국집에 간다. 지난주에도 중국음식을 먹으러 갔다. 그때 나는 이 ‘중국집의 우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동료 중 누군가가 피식 웃었다.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고. 짬짜면을 먹으면 된다고. 반으로 나뉜 그릇에 짜장면과 짬뽕을 반씩 담아내는데 그걸 먹어 본 적이 있느냐고. 나는 그 동료에게 말했다. 그게 그렇게 간단치 않다. 물론 나는 짬짜면이란 걸 먹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걸 먹어보면 오히려 짜장면이나 짬뽕만 한 그릇 먹는 것보다 못한 맛이었다. 왜 그럴까?

내가 생각한 가설은 이렇다. 짜장면이 정말 맛있는 것은 짜장면을 먹을 때가 아니라 짬뽕을 먹으면서 짜장면을 그리워할 때다. 역시 짬뽕이 정말 맛있는 것은 짬뽕을 먹을 때가 아니라 짜장면을 먹으면서 짬뽕을 그리워할 때다. 그리움이 맛에 대한 기억을 강화한다. 그런데 짜장면과 짬뽕을 반씩 담아 한 그릇으로 먹으면 그 그리움이 없어진다. 그러니 맛이 있을 턱이 없다.

나는 옛날에 안다 형에게서 ‘사과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은 사과 한 알을 다 먹는 게 아니라 딱 한입만 베어 먹는 것이다. 남은 사과를 보며 ‘저걸 다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그리워하면서 말이다.

내 가설에 동료들은 모두 공감하는 눈빛이다. 심지어 동료 중 한 명은 감탄하기까지 한다. “그렇군요. 그래서 지금 짜장면을 춘장까지 싹 다 드신 거군요.” ●

김상득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에 근무하며, 일상의 소소한 웃음과 느낌이 있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아내를 탐하다』『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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