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1호기, 2017년 영구정지 … 원전 37년 만에 첫 폐로 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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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군의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가 앞으로 2년 뒤인 2017년 6월 영구 정지된다. 국내 원전 37년 역사상 첫 폐로 결정이다. 고리1호기는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해 2007년 설계수명을 마친 뒤 2017년까지 10년 가동이 연장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2일 윤상직 장관 주재로 12차 에너지위원회를 열어 이런 내용의 운영 권고안을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에 전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수원은 권고안을 토대로 18일까지 이사회를 열어 영구 정지를 최종 승인할 예정이다. 윤 장관은 회의 직후 “원전 산업의 중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는 영구 정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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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부에 따르면 정부·민간 위원 19명 중 대다수가 영구 정지에 찬성했다. 고리1호기가 전체 전력설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5%(58만700㎾)로 적은 데다 원자로 고장이 잦아 폐로하는 게 경제적이란 판단에서다. 계속되는 고장이 주민들의 불신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2013년 국내 원전 비리로 원전에 대한 국민 인식은 더 안 좋아졌다. 지역주민을 비롯한 국민 다수가 폐로를 원하는 것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정부가 고리1호기를 영구 정지하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서다. 안전성이 담보되더라도 경제 효과가 크지 않으면 원전을 폐로할 수 있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할 수 있다. 원전 운영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은 고리1호기를 2017년부터 10년간 재가동하면 영구 정지할 때보다 1792억~2688억원의 경제적 이득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리1호기의 1차 재가동(2008~2017년) 때 지역지원금으로 나간 1310억원을 빼면 경제적 이득이 크지 않다고 본 것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폐로 기술 확보를 이번 결정의 또 다른 이유로 꼽는다. 현재 한국은 폐로의 핵심 과정인 해체 관련 기술 38개 중 21개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산업부와 미래창조과학부가 공동으로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해외에서는 이미 폐로가 시작된 지 오래다. 지난해 한수원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현재 가동이 영구 정지된 원전은 총 149기로, 이 중 미국·독일 등에서 19기의 해체가 끝났다.

 한수원은 고리1호기가 안전성 항목을 충족하는 데다 경제성도 충분하다는 이유로 계속 운전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계획대로라면 고리1호기의 폐로에는 14년이 걸린다. 2017년 6월 18일 영구 정지한 뒤 ▶핵연료 냉각(2018~2022년) ▶원자로 오염 제거·해체(2022~2028년)를 거쳐 ▶2030년 폐로 절차를 마칠 예정이다. 해체 비용은 6033억원으로 추산된다. 다만 원전 부지의 토양과 건물 표면 오염을 없애는 작업 기간(15년)을 합치면 실제 복원은 2045년 안팎이 돼야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수원은 지난해 말 고리1호기 폐로 결정에 대비해 해체 비용 6033억원을 현금으로 은행에 예치해 놓았다. 원래 3251억원었지만 2012년 방사성폐기물 관리 비용이 포함되면서 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비용은 실제 폐로 절차에 들어가면 달라질 수 있다. 첫 폐로인 만큼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고리1호기 해체 비용을 1조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고리1호기 영구 정지 권고가 내려짐에 따라 정부가 추진 중인 ‘원자력시설해체 종합연구센터(이하 해체센터)’ 유치전이 달아오를 전망이다. 현재 부산·대구·광주·울산·강원·전남·전북·경북 8개 시·도가 유치 의향서를 정부에 낸 상태다. 자치단체들은 해체센터에 필요한 부지(3만3000㎡ 정도) 제공 등 지원책을 제시하고 유치 서명운동 등을 벌이고 있다. 고리원전을 끼고 있는 부산·울산시는 공동 유치도 추진 중이다.

 이번 결정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환경단체들은 반겼다. 121개 단체로 구성된 ‘고리1호기 폐쇄 부산범시민운동본부’ 천현진(37) 사무국장은 “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 결정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원전 인근 기장군 장안읍 길천리 주민들은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주민 조기 이주를 요구했다. 김명복(55) 길천이장은 “원전 때문에 농지와 어업권을 빼앗겨 먹고살 방법이 없다”며 “900가구 2000여 명을 빨리 이주시켜 달라”고 했다. 길천리 주민들은 최근 두 달가량 고리원전 앞에서 이주 요구 집회를 열었다.

 반면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국내 해체 기술이 준비가 덜 됐다. 일단 계속 운전을 허용한 뒤 기술이 개발되면 그때 영구 정지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안정성이 검증됐는데도 폐로하기로 한 것은 여론에 떠밀린 정치적 결정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세종=이태경 기자, 부산=황선윤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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