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항쟁-월드컵 기념] 시청 앞 가득찰 때 한국은 변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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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해 6월 서울시청 앞 광장은 뜨거웠다. 시청 앞 광장과 광화문 네거리가 도화선이 돼 전국적으로 번진, 월드컵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는 길거리 응원단의 숫자는 1백만, 1백50만, 4백50만, 6백50만명으로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었다.

16년 전인 1987년 6월, 시청 앞은 시민들의 거센 민주화 요구와 국가권력이 충돌한 투쟁의 거리였다. '넥타이 부대'로 대표되는 중산층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고, 7월 이한열의 장례식에는 1백만명이 모여들었다.

*** 6월 항쟁-월드컵 기념

7일 오후 시청 앞 광장에서는 87년 6.10 항쟁과 지난해 월드컵 열기를 통해 확인된 국민적 에너지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깊은 문화행사가 열린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박형규)가 문화관광부.문예진흥원 등의 후원을 받아 마련한 민주 대행진기념제 '6월, 민주 대광장'이 그것이다.

기념제는 문단의 마당발 김정환(49)시인과 민중가요 '그날이 오면'의 작곡자 문승현(45.경희대 예술학부 교수)씨가 공동 연출한 '6월, 평화와 미래 콘서트', 임옥상씨의 풍경(風磬) 퍼포먼스, 최병수씨의 얼음조각 퍼포먼스, 인디 록 밴드 공연.먹거리 장터.인라인 스케이트 타기 등으로 어우러진 난장 프로그램, 87년과 2002년 6월 사진전 등으로 구성된다.

*** 이애주씨 살풀이 재연

김씨와 문씨는 콘서트의 백미로 이한열 장례식에서 살풀이춤을 췄던 이애주씨의 무대를 꼽았다.

이씨가 시청 앞에 모인 수만, 수십만의 군중 앞에서 춤사위를 펼치는 것은 87년 이후 16년 만이다.

이씨의 무대는 12분간 진행된다. 전인권.안치환.노찾사와 '벗이여 해방이 온다'를 부른 윤선애가 출연하고 대형 모니터를 통해 고 문익환 목사의 육성, 교황의 반전 메시지도 만날 수 있다.

공연의 마지막은 문씨가 88년 '사계' 이후 15년 만에 내놓은 새 노래 '백년 후에는'으로 장식한다.

문씨는 기념제가 "프랑스의 혁명기념제나 미국의 독립기념일처럼 시민들을 하나로 묶는 정치 축제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프랑스의 경우 혁명 기념제 기간 중에는 에펠탑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축제를 즐기며 혁명의 의의를 되새기는데 비해 아직까지 우리에게는 시민사회를 하나로 묶었던 과거의 경험, 6.10 항쟁 같은 정치적 사건이 행사의 중심이 되는 축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문씨는 특히 "6.10 항쟁은 넥타이 부대가 주축이 돼 한국 민주주의가 진전하는데 큰 디딤돌이 됐던 사건인데도 진보 진영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며 "그동안 6.10 항쟁 기념 행사들이 시민들의 일상적 축제로 자리잡지 못한 상황은 시민사회의 미성숙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시인 김씨는 "월드컵 4강만을 되풀이해 되새기는 축하 행사는 쉽게 사그라지고 말 것"이라며 "월드컵 때 확인했던 열기는 '양'적인 것이었다. '질'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 역사 기리는 시민 축제로

6.10 항쟁에 참여했던 386세대와 지난해 시청에 모였던 청년세대가 한자리에 모여 역사적 기억을 되살리고 미래를 전망하는 기회가 필요하다. 기념제가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을 이어갔다.

문씨는 "지난해 월드컵 기간 중 국민들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목격하며 우리 시민사회도 발전할 수 있겠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며 "기념제가 자칫 일과성 분출로 끝나기 쉬운 월드컵의 열기를 6.10 항쟁의 연장선에서 이어가는 하나의 깃발, 향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기념제를 정례화할 계획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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