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두고 떠난 엄마도 양육비 대라” 싱글대디 소송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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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A씨(37)는 3년 전 성격 차이로 아내와 이혼했다. 이후 네 살 된 딸을 맡아 키워 온 ‘싱글대디(Single Daddy)’다. A씨는 지난 4월 서울가정법원에 전처 B씨(35)를 상대로 양육비 이행명령 신청을 했다. 이혼 때 매달 20만원씩 양육비를 주기로 합의해 놓고 거의 보내지 않아서다. 미용일을 하는 B씨는 일정한 소득이 있었지만 첫 재판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재판장이 “밀린 양육비 중 일부라도 주라”고 중재했으나 허사였다. 한 달 뒤 재판엔 아예 출석하지 않았다. 그러자 법원은 B씨에 대해 10일간 구치소 감치(監置) 명령을 했다. “재산이 없다는 주장만으로 어머니의 자녀에 대한 양육비 부담의무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는 이유였다. 법원 관계자는 “올해에만 양육비 지급을 거부한 부모 7명을 감치했는데 엄마 쪽을 감치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했다.

 자녀 교육비 등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싱글대디들이 전처를 상대로 내는 양육비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자녀 양육은 부부 공동의 의무라는 인식이 커진 데다 일하는 여성이 많아지면서 양육비를 받아 내려는 아버지가 늘고 있는 것이다.

 2년 전 아내와 이혼한 뒤 초등학교 6학년 딸을 홀로 키우고 있는 양모(43)씨도 지난달 전처인 이모(40)씨를 상대로 양육비 청구소송을 냈다. 이혼 당시 이씨는 “딸을 키우겠다”며 데려갔으나 얼마 되지 않아 재혼을 한다며 양씨에게 딸을 맡기면서 매달 30만원씩 양육비를 주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양육비는 1년 가까이 들어오지 않았다. 양씨는 담당 변호사에게 “애만 맡겨 놓고 새 가정을 꾸려 혼자만 잘살겠다는 것 아니냐”며 분개했다고 한다.

 젊은 싱글대디뿐 아니라 자녀를 다 키운 뒤 뒤늦게 전처에게 과거 양육비를 정산하라며 소송에 나서는 중년 싱글대디도 많다. 2004년 이혼하며 당시 14세, 9세 아들 둘을 키워 온 김모(51)씨는 둘째가 19세가 된 지난해 전처 박모(48)씨를 찾아 양육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김씨가 10년 만에 나타나 수천만원의 양육비를 내놓으라고 하자 박씨도 가만있지 않았다. 당시는 양육을 부담하지 않는 쪽이 ‘양육비부담조서’를 쓰는 의무도 없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아이들의 어머니로서 양육비를 부담할 의무가 있다”며 “10년치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한부모 가구의 양육비 확보를 돕기 위해 지난 3월 문을 연 여성가족부 산하 양육비이행관리원에는 4일까지 상담 신청만 1만2619건이 들어왔다. 이 중 1300여 건(약 12%)이 싱글대디들의 양육비 문의다. 양육비관리원 정지아 변호사는 10일 “정부가 당사자를 대신해 양육비 확보를 위해 상대방의 주소나 근무지, 재산조사까지 해 주다 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의 문의가 많다”며 “싱글맘 사건이 대부분이지만 싱글대디나 미혼부 사건도 적지 않아 놀랐다”고 말했다. 가사소송법상 자녀가 성년(만 19세)이 되기 전까지 양육자가 아닌 상대방에게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사 전문 이현곤(법무법인 지우) 변호사도 “과거엔 아내가 전업주부인 경우가 많아 전처 상대로 양육비를 달라는 일이 거의 없었다”며 “자녀가 중·고교에 진학하면서 양육비 대기가 힘에 부치는데 연락이 끊긴 전처를 찾을 수 있는지,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는지를 묻는 중장년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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