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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 “작가 상상력 뛰어넘는 사건 많아 소설 안 팔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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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980년대 밀리언 셀러 『인간시장』의 작가 김홍신씨. “아직도 한국사회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 같다”고 했다. 소설을 써서 그 문제들을 푸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80년대 문학을 얘기하며 소설가 김홍신(68)을 빼놓는 건 이상하다. 군부 독재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 창구로 문학이 한껏 달구어졌던 시절 김씨는 특유의 대중성을 무기로 시대의 집단 울분을 달랬다. 협객(俠客) 같은 스물두 살의 법대생 장총찬을 내세워 사이비 종교단체, 조직폭력배, 부패한 사법체계 등 당대의 사회부조리를 통쾌하게 파헤쳤다. 81년 주간지 연재를 시작해 10권으로 완간된 후 지금까지 560만 부 팔린 것으로 집계되는 장편소설 『인간시장』이다. 주로 술집 여종업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70년대 최인호·조선작 등의 ‘호스티스 문학’의 뒤를 잇는 현대판 무협소설의 등장을 알렸다.

 유명한 ‘공업용 미싱’ 발언 등 정치권으로 외도했던 김씨가 다시 문학으로 돌아온 것은 2007년 10권짜리 대하 역사소설 『대발해』를 출간하면서다.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김씨가 요즘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인간시장』을 최근 재출간했고, 지난달에는 본격적인 연애소설 『단 한 번의 사랑』(이상 해냄)을 펴냈다.

 『단 한 번…』은 한 달 만에 4쇄 2만 부를 찍었다. ‘한국소설 실종 현상’이 공공연히 거론될 정도로 출판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현실에서 이례적이다. 비결이 뭘까. 책 홍보 행사, 강연 등으로 바쁜 김씨를 9일 만났다.

 - 연애소설에 대한 반응이 나쁘지 않다.

 “정확한 이유는 나도 잘 모른다. 나는 그동안 사회 비판이나 역사의식을 주로 다루는 작가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사람이 연애소설을 썼다고 하니 일단 호기심을 느끼는 것 같다.”

 - 그것뿐인가. 다른 이유는 없을까.

 “누구나 가슴 찡한 사랑을 해본 경험이 있지 않나. 나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가 사랑의 전과자들이라는 얘기다. 세월이 흘러도 육신이 말라 비틀어지고 영혼이 불 타 없어질 만큼 열정적 사랑을 해보고 싶은 욕구는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상황과 현실 때문에 못 하는 거다. 그런 점을 건드리지 않나 싶다.”

 소설은 결혼과 함께 활동을 중단했던 40대 여배우가 말기암 판정을 받자 기자회견을 자청해 과거 첫사랑의 상대를 밝히고는 죽기 직전 마지막을 그와 함께하고 싶다며 공개 구애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두 사람이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연 등 연애사를 복원하는 가운데, 흥미로운 건 여배우 강시울을 납치해 강제 결혼했던 조진구가 가짜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이라는 점이다. 김씨는 실제로 국회의원 시절 가짜 독립운동가 5명의 과거를 밝혀내 훈장을 박탈하도록 한 일이 있다. 그 경험을 소설 속에 녹인 것이다.

 - 연애소설에 사회고발적인 내용을 담았다.

 “나는 사회를 억지로 뜯어 고쳐야 한다는 사회개조론자는 아니다. 하지만 사회 비판 의식은 강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법륜 스님이 관여하는 통일운동 시민단체인 ‘통일의병’ 대표를 맡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남남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덜컥 통일이 되면 남북갈등은 상상을 초월할 거라고 생각한다. 통일 문제를 포함해 아직도 우리 사회는 부조리,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생각한다.”

 - 요즘 한국소설이 너무 안 팔린다고 한다.

 “책이 워낙 안 팔리는 시대 아닌가. 더구나 작가의 상상력을 뛰어 넘는 사건들, 가령 지난해 세월호나 올해 메르스 사태, 현 정부의 잇단 총리 낙마 등 엄청나고 궁금한 일들이 너무 많지 않나. 하지만 한국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언젠가는 살아나리라고 본다. 일정한 주기가 있는 것 같다. 한국문학이 살아나는.”

 - 문학 내부의 활기가 떨어져 재미있는 장편이 나오지 않는다는 우려도 있다.

 “작가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 이런 기가 막힌 표현력이 있나, 감탄하며 읽게 되는 작품들이 많다. 조정래 선배의 장편 『정글만리』만 해도 부러워하며 읽었다. 젊은 작가들도 잘 쓴다.”

 - 앞으로 집필 계획은.

 “사학 비리를 들추는 장편 의 시놉시스 작업을 끝냈다. 일부 사립대학들은 대학병원이나 학생 식당, 교수 임용 등 온갖 방법으로 탐욕스럽게 돈을 끌어 모은다. 생전 최인호 선배와 쓰기로 약속한 붓다의 일대기를 다룬 장편소설도 세 권 분량의 스토리를 구상해뒀다.”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홍신=1947년 공주 출생. 76년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인간시장』으로 국내 첫 밀리언 셀러 기록을 남겼다. 산문집 『인생사용설명서』 등 1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현재 건국대 석좌교수. 96∼2003년 15·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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