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탈영병 인질극 상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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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여학생 구출>
14일 상오7시20분부터 서미화양(16·군산여고l년)등 여학생 5명과 김은숙양(28)등 약속다방 종업원 2명등 모두 7명을 인질로 붙잡고 군경과 대치한 탈영병들은 소속부대장의 8차례에 걸친 전화설득끝에 14일 하오6시40분쯤 박·김 두하사의 중학교 선배인 이성희중사와 입대동기생인 송재호·한상조하사등 동료부대원등 3명이 대리인질을 자원하여 무장을 하지 않은채 다방안으로 들어가자 5분쯤뒤 여학생 5명을 풀어 주었다.
소속부대장은 두 탈영병에게 『목숨을 아껴라. 더 이상 피해가 나지 않도록 하자』 『자수하면 목숨을 구할수 있다』는등 끈질긴 설득을 했으나 하오1시까지 탈영병들은 『이양 (김하사 애인 군산 모여고3년)을 다방앞 횡단보도 신호등이 있는 전신주옆에 세워 두면 쏘아 죽인후 자수하겠다』며 설득에 응하지 않았다.
하오 1시15분부터 박하사의 어머니 신옥순씨(52)가 군지프에 마련된 스피커를 통해 『영규야, 자수해라. 학생들을 풀어주고 자수하면 살수있다』 『여태까지 잘했는데 불효하지 말아야지』하는 방송이 계속되면서 탈영병은 심경에 변화를 느끼는듯 어머니의 자수권유 방송이 들려올때마다 총을 마구 쏘았으며 하오3시쯤부터 『학생들을 내보낼테니 우리 여자친구들을 들여보내라』고 하는등 인질을 풀어줄 뜻을 비쳤다.
탈영병들은 하오5시20분쯤 소속부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성화중사외 2명을 무장해제하고 보내면 인질을 풀어 주겠다』고 말해 부대장이 보내는 방법을 묻자 『횡대로 이성희중사를 좌측에 세워 보내라』고 요구했다.
탈영병들의 요구에 따라 하오6시40분쯤 이중사등 3명이 『밖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총을 쏘지 말라』고 외치며 이중사를 선두로 차례로 다방계단을 내려갔다. 탈영병들은 다방안에서 『팬티만 입고 들어와라』고 요구했다.
이중사가 『우리를 그렇게 못 믿겠느냐』고 말하자 탈영병들은 『머리에 얹었던 손도 내려라』며 약간 강경한 태도를 누그러뜨리는듯 했다.
이어 5분뒤 여학생 5명은 이중사를 따라 다방계단입구까지 나와 대기하고있던 다른 수색대원들에게 인계돼 군트럭에 실려 군산도립병원에 입원했다.
풀려난 학생들은 지친 모습이었으나 건강상태는 양호한것으로 알려졌다.

<다방안 설득>
여학생 인질 5명을 내보내면서 김하사가 『내가 마음이 약해 너희들을 못 죽인다. 배가 고플 테니 먹어라』며 다방에 있던 요구르트를 건네주기도 했다.
탈영병들은 처음 『3명이 들어왔으니 3명만 내보내겠다』고 했으나 이중사가 『너희들 동생같은 여학생들이 가엾지 않느냐』고 설득하자 여학생 모두를 풀어주었다.
시간이 지남에따라 이들의 마음이 누그러진것을 눈치챈 이중사등은 다방위 유진슈퍼마킷에 가서 맥주 7병을 갖고와 계속 권하며 적극적으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술잔이 몇차례 오가자 그때까지의 태도와는 달리 김하사는 자수하겠다는 뜻을 비친반면 내성적인 박하사는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이중사등과 탈영병들은 모두 18병의 맥주를 마셨다.

<총격전>
군경당국은 다방에 남아있던 김은숙·유진순(26)양등 2명의 다방종업원도 구출하기 위해 하오 9시쯤 『부대동료 가운데 너희들이 원하는 사람을 들여보낼 테니 김양등을 내보내 주겠느냐』고 하자 처음에는 응하는듯 했으나 곧 이를 거부했다.
당국은 김하사가 술에 취해 전화통화에서 횡설수설하는 낌새가 보이자 민간인 2명을 비롯, 5명의 인질에대한 안전에 위험을 느껴 특공대에 의한 인질구출작전을 계획했다.
김하사는 하오10시30분 여자인질 1명을 데리고 다방입구로 나와 자신이 탈취해 타고 온 시내버스에 접근을 시도했다가 현장주변에 배치된 군경들로부터 위협사격을 받고 40여발을 응사하면서 다방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하오10시40분쯤 김하사는 부대장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15분뒤에 실탄 30발을 갖고 밖으로 나가 자살을 하겠다』고 통고, 군경합동수사본부는 김하사가 탈출을 시도하려는 것으로 보고 다방입구에 2개조, 후문에 1개조, 건물앞 도로변에 l개조등 4개조의 저격수를 배치했다.
김하사는 자신이 통고한 시간보다 2분쯤 늦은 하오10시57분 여자인질 1명과 이중사를 양옆으로 세워 자신을 감싸게하고 다방 정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이때 김하사에게 끌려나오던 이중사는 계단을 오르다가 시내버스의 타이어가 보이는 지점에 이르자 김하사를 뿌리치고 달아났지만 총격전중에 복부관통상을 입었고 김하사는 저격조의 총격에 흉부관통상을 입고 각각 쓰러졌다.
이때 다방안 주방쪽에서 여종업원 1명과 동료 2명을 인질로 잡고있던 박하사는 자신의 목에 총을 쏘아 자살했다.

<현장>
인질극이 벌어졌던 약속다방안에는 빈맥주병과 집기등이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었고 박하사가 흘린피가 홀안에 흥건히 괴어있었다. 탈영병들은 군경과 대치중 계속 TV를 보고있어 인질극이 끝난후에도 TV는 한동안 그대로 켜져있었다.
탈영병들은 인질로 잡았던 학생들에게 난폭하게 굴지는 않았으나 TV뉴스에 자신들의 이야기가 보도될때마다 흥분, 총을 난사하는등 신경질을 부렸다는것.
군경합동수색대는 인질구출작전이 끝난직후부터 계속 현장주변에 대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군산=임시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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