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이는 삼성물산 주가 … “엘리엇 효과 … 당분간 계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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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8일 삼성물산 주가는 온탕과 냉탕을 오갔다. 이날 장이 열리자 마자 이 회사 주가는 8만400원까지 치솟으며 52주(최근 1년)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하지만 곧 하락해 시간이 갈 수록 하락폭을 키웠다. 결국 전날보다 7.36% 하락한 7만5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이날 52주 최고치를 기록한 장초반(8만400원)에 비하면 12.31%나 떨어졌다. 이 회사 주가는 6월 3일 이전까지만 해도 5만원 후반에서 6만원 초반을 오가며 큰 출렁임이 없었다. 하지만 4일 10.32% 급등했고, 5일에도 9.5% 올랐다. 그러다가 이날 갑자기 7% 이상 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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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이유는 이 회사가 제일모직과 합병하기로 한 데 대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급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4일 삼성물산의 지분을 7.12%로 끌어올렸다고 공개한 뒤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은 삼성물산의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 했을 뿐 아니라 합병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으며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에 반한다”고 밝혔다. 그후 엘리엇은 각본이 있는 듯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4일 삼성물산에 주주제안을 통해 현물배당이 가능하도록 정관 변경을 요구하는가 하면, 5일에는 국민연금 등 삼성물산 주요 주주에 서한을 보내 “이번 합병이 주주에게 불합리한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어 반대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일부 외국인 투자자도 동조하는 분위기다.

 박유경 네덜란드연기금(APG) 이사는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개선하고 오너 일가의 지분율을 높인다는 합병의 정신에 대해서 찬성한다”면서도 “다만 합병비율에 대해선 공정치 못하기 때문에 모든 지주에게 골고루 혜택이 갈수 있도록 1대 0.35의 합병 비율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APG는 삼성물산 지분 0.3%를 보유하고 있으며 3월 현대차 주주총회에서 거버넌스 위원회 설치를 이끌어내기도 한 행동주의 투자자다.

 엘리엇은 자산 29조원을 운용하는 대형 헤지펀드다. 아르헨티나 국채를 매입한 뒤 아르헨티나가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했을 때도 소송을 통해 아르헨티나에 전액 상환하라고 요구해 승소하기도 했다. 초일류 기업인 삼성으로서도 만만치 않은 상대다. 이렇게 삼성과 엘리엇간 대결 가능성이 커지자 가장 재빠르게 움직인 건 외국인과 기관투자가였다.

 외국인 투자자는 삼성물산 주식을 4일 1076억원, 5일에는 707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삼성물산은 이틀 연속 외국인 순매수 상위 1위 종목에 올랐다. 기관투자가도 4일에는 190억원어치 순매도하더니 5일에는 477억원어치 순매수하며 삼성물산 주식 사재기에 나섰다. 하지만 8일에는 외국인과 기관 모두 35억원, 279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이들이 팔아치우자 주가는 큰 폭으로 떨어졌다. 증권가에서는 삼성물산 주가가 급등하자 이들이 일시적으로 차익실현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증시 전문가는 이런 출렁임은 당분간 반복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으로서도,엘리엇으로서도 ‘D데이’는 6월 11일이다. 이날은 주주확정기준일이다. 만약 누군가 삼성물산의 합병에 의결권을 행사하고 싶다면 주주확정일 이틀전인 9일까지 삼성물산 주식을 사둬야 한다. 당분간 이 회사 주가가 크게 출렁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이유다. 이 기간이 지나면 임시주주총회(7월17일)까지 양측의 세 대결이 어떤 형태로 가느냐에 따라 주가도 크게 요동칠 전망이다.

 오진원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임시주총까지 한 달 가량이 시간이 남아 있지만 현재 지분율 차이와 취득 기간을 고려하면 합병 무산보다 진행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과거 사례를 볼 때 엘리엇이 단기 차익 실현(주식 매각)을 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임시 주총 전까지는 삼성물산 주가가 강세를 보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국인 투자자는 “지금 한국 기업은 지배구조가 취약해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기업 인수합병 중간에 헤지펀드가 달려드는 게 너무 일반화돼 있다”며 “엘리엇도 경영권을 행사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신 합법적 수단을 이용해 소송을 시도할 것이고 이에 따라 삼성도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창규·김영민 기자 teente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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