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 채찍은 ‘베팅 말라’ 신호… 경마승부 조작 기수 집행유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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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해 달리지 않을 때는 채찍을 오른손에 들겠습니다.”

19년차 경마 기수인 A(42)씨는 2013년 6월 자신을 찾아온 사설경마 참가자 B(41)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의 경마승부 조작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B씨는 경마 도박에 빠져있었다. 경마가 열리는 날마다 경마장을 찾았고 급기야 기수인 A씨에게 접근해 부정한 청탁을 했다. A씨에게 자신 명의의 체크카드를 건네주며 “경주마의 출주여부, 건강상태, 우승가능성 등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A씨에게 건넨 체크카드 계좌에 1000만원을 입금했다. A씨는 일주일에 두 번 열리는 경마와 관련 B씨에게 미리 경주마의 상태·습성·성향, 기수나·조교사의 동향 등을 알려줬다. 또 자신이 경주에 나가는 날엔 ‘오른손 채찍’ 식으로 경마승부 신호를 주고받았다.

두 사람의 거래는 2014년 10월까지 지속됐다. A씨가 정보를 줄 때마다 체크카드 계좌로 100만∼1000만원이 들어왔고, 총 4900만원을 받아 챙겼다. B씨는 이 기간 경마에 1억2000만원을 탕진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 장준현)는 한국마사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4일 밝혔다. B씨는 벌금 1500만원에 처해졌다. 재판부는 “부정한 범행이 1년5개월 동안 수차례 반복됐고 수수한 금품도 상당해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면서도 “A씨가 이 사건으로 기수면허를 반납한 점,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는 점, 동료 기수들이 선처를 호소하는 점 등을 참작해 형을 정했다”고 말했다. B씨에 대해선 “이미 동종 도박 범행으로 벌금 3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고도 바로 다음날 범행을 재개했다”며 이번에는 벌금을 1500만원으로 대폭 올렸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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