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메르스 지역 이기주의 … 인천·강원·충북, 타지역 환자 거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박근혜 대통령은 3일 청와대에서 ‘메르스 대응을 위한 민관합동 점검회의’를 주재하며 “국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의 투명한 공개”라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박 대통령, 양병국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장, 김홍빈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의사, 김우주 대한감염학회 이사장. [청와대사진기자단]

3일 오후 충북 충주시에 있는 한 공공 연수원의 진입로는 방역 차량과 구급 차량으로 막혀 있었다. 정부가 이곳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들을 집단으로 격리하는 시설로 활용한다는 방침을 세우자 지역 공무원들이 입구를 가로막은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31일 연수원을 메르스 격리 대상자 시설로 지정해 운영하라고 했다는 내용의 공문을 충청북도에 보내자 충청북도와 충주시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복지부가 임의로 격리자를 이송하는 것에 대비해 시청 직원 네 명은 24시간 감시 근무를 서고 있다. 조길형 충주시장은 “메르스 발생 지역도 아니고 연수원 가까이에 마을과 학교·어린이집이 있어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메르스 환자와 격리 대상자가 늘어나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에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타 지역 환자를 우리 지역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지역 이기주의’적 현상도 나타난다.

 지난 1일 복지부는 각 지자체에 ‘메르스 환자 등 격리병상 활용’ 협조요청 공문을 보내 환자 거주 지역과 관계없이 병상 활용을 요청할 경우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이에 대해 인천시는 3일 “더 이상 타 지역 메르스 환자를 받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전날 질병관리본부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50대 여성을 사전 협의 없이 인천시의 한 대학병원으로 보낸 데 대한 항의였다. 이 여성은 경기도의 한 병원에서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고 서울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지만 인천으로 이송됐다. 심재봉 인천시 보건정책과장은 “인천에선 아직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는데 타 지역 확진 환자를 보내서 시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사전 통보 없이 인천으로 환자를 이송하면 각 병원에 연락해 환자를 받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강원도는 타 지역 환자가 도내에 있는 국가지정 격리병상으로 이송돼 오는 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김중근 강원도 보건정책과장은 “지역 주민 메르스 환자 발생에 대비해 격리병상을 남겨둬야 하고, 환자가 이송돼 오는 것만으로도 확산 위험이 생긴다는 판단에 따라 복지부의 요청을 거절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가지정 격리병상 운영에 대해 지자체는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가지정 격리병상은 국가가 예산을 지원해 신종 감염병 대유행에 대비해 마련한 입원치료 시설이다. 환자가 발생하면 병상이 비어 있는지 확인한 뒤 바로 이송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충주시의 연수원도 격리 대상자가 전국적으로 대량 발생할 때에 대비해 확보해 놓은 시설이라고 설명했다.

 감염 의심자가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국가지정 격리병상 부족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3일 현재 메르스 감염자는 30명, 메르스 검사가 진행중인 사람은 99명이다. 정부가 전국 17개 병원에서 운영하는 국가지정 격리병상은 모두 500여 개다. 이 가운데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는 환자를 격리하는 시설인 음압병상은 105개다. 메르스 환자와 중증 의심환자 등 35명이 이미 병상을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는 기존의 결핵 환자 등으로 채워져 있다. 음압병상은 병실 안의 압력을 복도보다 낮게 유지함으로써 공기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공기를 멸균해 배출하는 시설이다. 지역거점병원과 공공의료원, 민간 병원 등에도 100여 개의 음압병상이 있지만 메르스 환자가 계속 불어나면 모자랄 수도 있다.

 일부 음압병상은 제 기능을 못해 현재 수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남 진주시에 있는 국립 경상대병원은 지난해 정부가 실시한 음압시설에 대한 전수 조사에서 공기공조기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보수 공사를 하고 있다. 17일에야 공사가 끝난다. 이 병원은 2009년 정부로부터 2억5000만원을 지원받아 음압시설을 만들었다.

박현영·최모란·박진호·최종권 기자 hypar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