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南通新 사용설명서] 뉴욕 미술계 전설의 컬렉터, 집배원 보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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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설적인 미술품 컬렉터로 허버트 보겔(1922~2012)이라는 이가 있습니다. 컬렉터라고 하면 엄청난 부자를 떠올리지만 보겔은 뉴욕 브루클린의 할렘가에서 태어나 평생 집배원으로 살았습니다. 아내는 브루클린 도서관 사서였고요. 집배원으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연봉이 2만3000달러였다고 합니다. 평생 자가용을 가져본 적 없을 정도로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90세로 별세할 때까지 50년간 약 5000점의 작품을 수집했습니다. 당시로선 실험적인 젊은 무명작가들의 작품들이었죠. 무명이던 작가들은 후에 미술사에 길이 남을 유명 작가로 성장했고, 보겔 부부의 컬렉션도 그 명성이 높아졌습니다. 전 세계 미술전문가들 사이에 뉴욕에선 반드시 보겔 부부의 아파트를 방문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나중에 이들은 자신들이 모은 작품 전부를 워싱턴 국립미술관 등 50여 개 기관에 기증했습니다. 앤디 워홀, 존 케이지, 백남준,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었습니다.

 보겔 부부는 그냥 운이 좋았던 게 아니었습니다. 뉴욕예술대학 등에서 미술사나 미학이론 강의를 청강했고, 자주 전시회를 다니며 그림 보기를 즐겼다고 합니다. 작가들을 찾아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아했고요. 그러면서 좋은 작품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된 거였습니다.

 이번 주 커버 스토리는 미술 시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005~2007년 미술 작품에 대한 투자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크게 인기를 끈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등으로 급격한 침체기를 맞았죠. 여전히 국내 미술 시장 사정이 그리 좋아진 거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미술 감상을 즐기며, 공부도 하고, 아트페어 등을 다니며 좋아하는 그림을 직접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거죠.

 예술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삶에 풍요로움과 행복을 더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어 준다면 좋은 예술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미술 작품도 그렇겠죠. 꼭 비싸고 유명한 작품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말 가까운 전시회를 찾아 삶의 즐거움 하나를 추가해 보는 건 어떨까요.

박혜민 메트로G팀장 park.hy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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