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향해 달려온 삶, 인류 행복에 이바지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2015 호암상 시상식’이 열린 1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수상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공학상 김창진 박사,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호암재단 손병두 이사장, 사회봉사상 백영심 간호사. 뒷줄 왼쪽부터 의학상 김성훈 박사 부부, 예술상 김수자 현대미술작가, 과학상 천진우 박사 부부. [사진 호암재단]

1990년 서울 고려대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그는 아프리카행 비행기에 올랐다. 의료봉사를 위해서였다. 그때 나이 스물여덟. 이국으로 떠나는 딸과의 이별에 노모는 공항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말라위에서 열악한 의료 환경에 주민들이 제대로 진료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을 보고 눈물을 쏟았다. 그때부터 25년간 한 명이라도 더 살리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사람들을 설득해 병원을 만들고, 의료진을 양성할 간호대·의대도 만들었다.

 현지 주민들이 ‘시스터(sister) 백’이라 부르며 따르는 말라위의 ‘나이팅게일’. 1일 호암상(湖巖賞) 사회봉사상을 수상한 백영심(53) 간호사의 얘기다.

 그는 “꿈을 마음에 품으면 언젠가는 이뤄진다”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우리 삶이지만 말라위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것이 내 역할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금을 말라위 의료사업에 쓸 계획인데 호암의 이름으로 병원에 기부해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2015년 호암상 시상식이 1일 서울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열렸다. 백 간호사를 포함해 ▶나노의학이란 융합학문을 개척한 공로로 과학상을 받은 천진우(53) 연세대 언더우드 특훈교수 ▶전기습윤기술 창시자로 공학상을 받은 김창진(57) UCLA 교수 ▶예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세계적인 현대미술작가인 김수자(58)씨 ▶단백질 합성효소 연구로 암치료의 새길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의학상 수상자 김성훈(57) 서울대 교수 등 5명이 수상했다. 이들은 각기 상금 3억원과 순금 메달을 부상으로 받았다.

 김창진 교수는 시상대에서 에디슨을 꿈꿨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중학생 시절 60쌍이나 되는 새를 키우고, 모형 비행기를 만들다 성적이 너무 떨어져 어머니가 학교에 불려간 적이 있다”며 “그럴 때도 부모님은 공부보다 균형잡힌 인간으로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개미라면 어떤 기계를 만들지, 아메바라면 어떤 장난감을 원할지 등 어릴 때부터 꿈을 꾸면서 연구를 해왔는데 이런 영광스런 자리에 섰다”고 덧붙였다.

 김성훈 교수는 “수없는 좌절과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저를 믿고 따른 연구실 식구들에게 감사를 전한다”며 공을 돌렸다. 천 교수는 “나노의학은 학문적으로 시작단계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세계와 경쟁하며 더 큰 미래를 향해 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 참석한 스벤 리딘 노벨화학상 위원(스웨덴 룬드대 교수)은 “성공이 드물게 찾아오는 손님이라면 실패는 오랜 친구와 같이 신뢰를 주는 단짝”이라며 “호암상은 한국 사회가 이룩해온 성취와 진보를 유감없이 보여준 역사적 기록이 됐다”고 평가했다. 호암재단은 호암상을 글로벌 학술상으로 키워나가기 위해 노벨상 수상자인 리딘 위원을 선정과정에 참여하도록 했다.

 이날 열린 시상식엔 와병 중인 이건희(73) 삼성전자 회장의 뒤를 이어 최근 삼성문화재단·삼성생명공익재단의 신임 이사장으로 선임된 이재용(47) 삼성전자 부회장이 참석했다.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은 시상식 후 신라호텔에서 열린 저녁 만찬에 참석해 수상자들을 격려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호암상=올해로 25회째 열렸다.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을 기리기 위해 1990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제정했다. 학술과 예술, 인류복지 증진에 탁월한 업적을 지난 인사에게 상을 준다. 올해까지 총 127명이 이 상을 받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